얼마 전 '나의 해방일지'라는 드라마를 보라고 추천받았다. 내가 좋아했던 '나의 아저씨'를 쓴 작가였기에 내용도 찾아보지 않고 바로 1화, 2화를 연속으로 보게 되었다.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고 보던 중... 사실 1, 2화를 보면서 마음이 감자를 먹은 듯 답답하였다. 드라마에서는 내 나이 또래(서른 초반)가 가지는 어려움과 고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는데 휴식 겸 마음 편히 보다가 약간 무겁게 다가왔다. 그래도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궁금하기에 계속 시청해보려고 한다.
30대가 되면서 주변 또래들에게는 많은 고민들(번아웃, 스트레스 관리, 대인관계, 가족, 연애, 직장 등)이 생겼다. 예전보다 고민을 털어놓은 친구들도 많아졌고, 내게 상담을 부탁하는 횟수도 늘었다. 정신과나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여 전문가와 상담받는 방법을 알려주어도 전문가가 아닌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더 편한다고 한다. 나는 상담자와 내담자 간에는 '최적의 심리적 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너무 멀어도 안되고 너무 가까워도 안 되는 최적의 거리... 거리가 멀면 속 이야기를 하기 편하나 깊은 이해가 부족하여 상담 효과는 감소하고, 가까우면 내담자의 성향과 상황을 잘 이해하기에 상담에 도움이 되나 속 이야기를 전부 털어놓기는 어려울 수 있다.
보통 상담을 해도 이야기를 듣고 해주다 보면 1~2시간은 기본으로 소요된다. 마음 같아선 모든 지인들을 다 해주면 좋겠으나 나도 직장을 다니면서 글까지 쓰다 보니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을 때가 많다. (종종 통화 시간을 예약하는 친구도...) 그러다 보니 나누는 대화 중 일부를 글로 쓰면 비슷한 고민을 하는 또래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요즘은 대화를 하기 전에 두 가지를 미리 이야기한다. 1) 나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견해일 뿐이니 참고만 하라는 점과 2) 대화의 일부를 익명을 유지하는 선에서 글의 소재로 활용해도 괜찮은지 확인한다.
'나의 상담일지'를 작성해보고자 한다.
오늘의 대화 주제는 '우울의 반대는 무엇일까?'였다.
여러 원인으로 우울감에 사로잡혀있는 친구는 이를 극복해보고자 다양한 시도를 하였었다. 그 친구는 우울의 반대를 '긍정, 신남, 즐거움'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울을 극복하기 위해서 더 재밌는 일, 신나는 일, 자극적인 일을 억지로라도 해서 우울을 덮고자 했다.
나: 그래서 효과는 있었어?
친구: 아니, 그 순간일 뿐이고 계속 원점이네...
정답은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우울'의 반대는 '건강한 내적 동기'가 아닐까 싶다. 우울이라는 감정은 삶의 동기를 약화시키고 인생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린다. 우울은 덧칠하여 가려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해소시킨 후 소화해하는 감정인 듯 싶다. 결국 우울의 원인을 마주하지 못하면 우울은 계속 지속되거나 지나가더라도언젠가 재발될 가능성이 높다.
대화를 하며 우울의 근본적인 원인을 함께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그 순간에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적절하게 대처를 하고 있는 건지? 자기를 해치는 방향으로 대처하지 않았는가?
항상 그렇듯 원인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중에서도 회사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가장 커 보였다. 매번 회사에서 받은 감정들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하고 쌓아온 듯했다.
친구: 어떻게 해야 할까?
나: 신체화 증상까지 나타난 점과 견뎌낼 상황이 아닌 것으로 보아 잠시 일을 그만두고 휴식의 시간을 갖는 게 좋아 보여.
친구는 내 말을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만두라고 말해준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견뎌라', '그땐 다 그렇다', '해놓은 게 아깝지 않냐?', '경력 단절되면 나중에 재취업 어떡하려고 그러냐?', '요즘 취업 힘든 거 모르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친구는 왜 그렇게 말해주었는지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지금 당장 3~6개월 정도 쉬는 게 아까울진 몰라도... 계속 무리하면서 건강을 잃으면 수년 이상을 고생하게 될지도 모른다. 정확한 시점을 판단할 수는 없지만... 분명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치는 것은 너무도 위험한 도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