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구 집착 성향
두 번째 라켓은 내가 배드민턴을 쳤었던 과거의 영향이 꽤 컸다. 배드민턴을 치면서 '요넥스'라는 브랜드를 접했는데 라켓의 탄성이 아주 좋았기에 그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테니스 라켓도 역시 생산하는 줄은 테니스를 치다 보니 알게 되었고, 막연한 신뢰감에 마음이 끌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라켓의 무게에 있었다. 아무래도 260g짜리 라켓을 치던 사람이 급하게 무게를 올리기에는 부담감이 있었는데 내가 구입하고자 했던 이존은 270g, 285g, 300g 세 가지가 있었고 270g은 너무 가벼운데 285g은 너무 무거운 듯해서 고민을 아주 많이 했다.
기존의 라켓에 납도 붙여보고 가죽그립도 감아보고, 구입을 결정하기 전 무게에 대해 몇 가지 실험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가 바뀌는 시점이 되었다. 레슨을 평소처럼 받고 있던 어느 날,
"혹시 이존 사실 거면 저한테 얘기하세요!"
코치님이 먼저 꺼낸 말이다. 지인 중에 출고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는데 미리 얘기하면 출고가에 수량 확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장 제 것도..."
"그럼 무게는 몇 그램으로 할까요? 285? 무거우려나."
"무겁게 느껴지기는 할 건데 일단 쳐보시면 무거운 라켓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코치님의 권유로 일단 도전하기로 했다. 요넥스 라켓이니 스트링도 '요넥스 폴리투어'로 텐션은 44 파운드로 했다. 당시에는 스트링 종류나 텐션에 큰 관심이 없었다. 라켓을 바꾸니 갑자기 발리 실력이 확 올라갔다. 흔히 말하는 삑사리가 덜 나고 묵직한 느낌이 났다. 그런데 증량을 해 보니 처음 한두 달은 또 엘보가 찾아왔다. 그렇지만 곧 적응하고, 엘보가 또 왔나 싶으면 얼마 후 적응하고를 반복했다. 그러면서 팔힘과 실력이 조금 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생각 없이 처음 맨 스트링으로 계속 레슨을 받고 있었는데 어느 날 코치님이
"스트링이 다 늘어났는데요?"
하는 것이다.
"그걸 그냥 보고 알 수가 있어요?"
코치님이 손으로 줄을 만져보니 줄이 그냥 힘없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다 늘어난 거예요."
칠 때에 소리도 좀 댕댕 울리는 소리가 난다는 것이다. 몰랐던 사실을 깨닫고는 스트링 교체를 위해 근처 테니스샵을 찾았다. 전에 계시던 코치님은 직접 운영하시던 샵이 있어서 라켓을 맡기면 직접 작업해서 가져다주셨기 때문에 편했는데 다시 그 샵을 직접 찾아가려고 하니 집에서 멀기도 해서 새로운 샵을 검색해 보았다.
몇 군데 없어서 결정이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다. 함께 치는 친한 동생과 샵에 가서 이것저것 질문을 해보았다.
"요넥스 폴리투어는 제 느낌에 금방 텐션이 떨어지는 것 같은데 줄마다 느낌이나 성질이 많이 다른가요"
"그럼요. 줄마다, 브랜드마다 다 다릅니다."
"제가 계속 44파운드로 쳐왔는데 요즘 자꾸 뻥 뻥 날아가는 느낌이 드는데 그러면 텐션을 높여야 되나요, 아니면 낮춰야 되나요?"
"텐션이 낮으면 공이 뻥 뻥 나가고, 높으면 덜 나가죠."
그 외에도 다양한 질문을 했는데 답을 너무도 상세하게 잘해주셨다. 후에 알고 보니 전문 스트링거 자격증이 있으셨고, 화려한 경력도 있으신 분이었다. 그리고 본인도 테니스를 자주 치시고 다양하게 스트링을 분석해 보시는 듯했다.
새로운 스트링으로 선택한 것은 '바볼랏 RPM 블라스트'였다. 텐션은 44파운드로 해 보았다. 텐션이 그리 높지 않은데도 엄청 단단한 느낌이 들었고, 오랫동안 쳐도 텐션이 떨어지지 않는 다는 느낌을 받았다. 남자들은 파워풀한 느낌에 이 스트링을 많이 찾는다는데 나는 그 정도 파워풀한 여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줄이 너무 딱딱하니 발리가 잘 되지 않았고, 스트링은 역시 조금 부드러운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스트링 유목민 생활은 2년 정도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