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24시간을 칼같이 쪼개 쓰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 대략적인 시간 계산부터 시작한다.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대략적인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이 뜻대로 흘러가면 나름 뿌듯하다. 그런데 그게 틀어지기라도 하면? 혼자서 괜히 화가 난다.
며칠 전에는 내 회사는 칵테일 제조와 위스키 시음 행사를 기획했다. 참 매력적인 이벤트였다. 올해 들어 스스로 다짐했던 것 중 하나가 ‘더 사교적으로 살기 위해 밖으로 나가자’였으니, 행사 참가 버튼을 주저 없이 눌렀다. 하지만 이벤트 당일, 회사 일이 오후 5시에 끝나고 행사는 저녁 7시에 시작이었다. 그 두 시간 동안 나는 사무실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문제는 그 두 시간이 갈수록 아까워 보였다는 데 있다. 머릿속에 '지금 해야 할 일'들이 자꾸 떠오르더니, 결국 나는 이벤트를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또 다른 날엔 치과에 다녀와야 했다. 내가 사는 곳과 거리가 꽤 있는 치과라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치과에 갈 때는 문제없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대중교통이 연착되며 1시간이 그냥 사라져 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하철역에서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치과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치위생사의 실수로 다시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제 1시간의 연착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 그리고 내 계획에 예상치 못하게 쳐 들어온 새로운 계획에, 내 시간을 할애한다는 생각에 몸속 깊은 곳으로부터 화가 났다.
제가 너무 빡빡한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