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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8월 9일

by June gyu

그토록 오랫동안 사용했던 노스페이스 가방과 드디어 인연이 끝났다. 고등학생 시절, 노스페이스 가방이 한창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철없던 나는 그 유행에 동참하고 싶었고,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졸라 결국 그 가방을 얻었다. 이후로 오랜 세월을 함께했다. 몇 년 전부터 여러 군데에 구멍이 나고, 군데군데 해진 모습이 눈에 띄었지만, 그 가방은 여전히 튼튼했고, 방수도 어느 정도 유지되었다. 무엇보다 낡으면 낡을수록 아무렇게나 막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오히려 마음을 편하게 했다. 가족이나 오랜 친구들이 만나면 제발 이제는 버리라고 했지만, 나로서는 쉽게 놓을 수 없는 물건이었다.


우니온 베를린의 경기를 보러 가던 날도 그랬다. 평소처럼 무의식적으로 그 가방을 챙겨 나갔다. 그런데 경기장으로 가는 길에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 가방, 경기장 안에 들고 들어가기에는 조금 큰 게 아닐까?’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입구에서 안내 요원이 나를 가로막으며, 가방이 너무 크니 보관소에 맡기고 들어가라고 했다. 순간 뮌헨에서 달리기를 하며 물품을 잘 숨겨두고 다시 찾곤 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다른 입구까지 가서 보관소를 이용하기는 귀찮았다. 게다가 이렇게 낡은 가방을 누가 관심이나 두겠는가 싶어, 경기장 근처 풀숲에 슬쩍 숨겨두고 경기에 들어갔다.


경기는 재미있었고, 나는 충분히 집중해서 즐겼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혹시 몰라 경기 종료와 동시에 서둘러 나와, 가방을 숨겨둔 곳으로 향했다. 멀리서 보니 풀숲이 잘 덮여 있어 가방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풀을 헤치고 찾아보니, 그곳은 이미 비어 있었다.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다행히도 가장 중요한 물건들, 휴대폰과 지갑은 미리 바지 주머니에 넣고 들어갔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잃어버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잠깐 화가 났다. 동시에, 그렇게 오래 함께한 가방과 이런 식으로 이별한다는 게 조금 아쉽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감정도 오래 가지 않았다. 언젠가는 정리해야 할 물건이었고, 어쩌면 이제야 때가 온 것뿐이었다. 가방 속에 있던 것이라 해봤자 오래된 맨투맨 한 벌, 이어폰 하나, 그리고 2유로짜리 리들 코인 코튼백이 전부였다.


베를린 친구가 말하길, 베를린은 뮌헨보다 훨씬 가난해서 무엇이든 길가에 두면 가져간다고 했다. 실제로 2주 남짓 지내보니 그 말이 충분히 납득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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