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라는 건 단순히 혀끝에서 느껴지는 감각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음식이라도 언제, 어떤 상황에서 먹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기억으로 남는다. 베를린에 도착한 첫날이 그랬다.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 음식점을 찾아 두 시간 넘게 거리를 헤맸다. 식당 문 앞까지 갔다가 발걸음을 돌리기를 몇 번 반복 후 괜찮은 식당을 찾지 못하고 결국은 집 근처의 인도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그날의 저녁 메뉴는 네팔식 만두와 카레수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만큼 인상적인 맛이었다. 아마도 긴 시간 거리를 배회하며 배가 고팠던 탓도 있었을 것이다. 배고픔과 지친 마음이 맛을 더욱 돋우았던 게 분명하다. 특히나 그 네팔식 만두! 그 만두는 뮌헨으로 돌아가기 전 한번 더 먹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2주가 훌쩍 지나가 버렸고, 오늘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디저트처럼 만두를 먹기 위해 다시 그 레스토랑을 찾았다. 양해를 구하고 만두만 주문했다. 그런데 이번엔 맛이 처음만큼은 아니었다. 그때는 튀긴 만두였고, 오늘은 쪄서 나왔으니 차이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이 이유는 아닌 듯했다. 맛은 분명 나쁘지 않았지만, 첫날의 그 충격적이었던 그 맛과는 완전 달랐다.
며칠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유난히 맛있었던 카페에 다시 들렀는데, 이번에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크루아상을 주문했다. 커피는 여전히 괜찮았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을 때의 맛에는 미치지 못했다.
참 신기하다. 사람의 입맛이라는 건 고정된 게 아니라 그 순간의 갈증, 배고픔, 피곤함 같은 것들과 얽혀 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떤 맛은 상황과 함께 기억되고, 시간이 흐르면 같은 음식이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온다. 결국 맛이라는 것도 음식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때의 나를 둘러싼 모든 조건들이 함께 만들어내는 기억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