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미용실 긴 의자에 누워 머리를 감는데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머리를 하려고 예약한 날과 아이들 학교 연말 콘서트 일정이 겹쳤다. 의도치 않게 하루에 스케줄이 두 개나 됐지만 잘됐다 싶었다. 어차피 나 같은 똥 손은 이런 날에 어떻게 하고 가야 할지 난감했을게 분명하다.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중학교 때 처음 귀를 뚫던 날이 생각났다. 학교 끝나고 우르르 액세서리 가게로 몰려갔던 날 말이다. 다 같이 반짝이는 귀걸이를 하고 분식집에서 뒤풀이를 했는데 얼얼했던 귓불만큼 매운 떡볶이를 먹는 그 순간만큼은 우리도 어른이었다.
최근에 나는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누가 봐도 멋진 사람 말이다. 나란 인간은 어떤 고지를 향해 달리다가 결승점이 보이기 시작하면 항상 멈춰 섰다. 그리고는 여기까지도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지금까지는 내가 스스로 멈춘지도 모른 채 삶을 정당화했다.
고작 내가 끝까지 해본 건 아플 걸 알면서도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뚫어 본 그 정도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때는 스스로를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정도의 사람이 어른이 되었답시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다.
사람들이 그런다. 아이를 낳는 순간 끝은 없다고. 순간순간 가장 옳은 결정을 하는 게 최선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육아가 마음에 든 것도 있다. 나는 끝이 보이면 겁부터 먹는 사람인데 끝이 없다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첫째 아이가 아팠던 동안 나는 손에 잡히는 무언가가 없어서 헤맸다. 기다리기만 해야 하는 지침서도 없는 시간을 마주했다. 끝도 없는 아이의 시간을 공유했다.
자식도 타인이다. 그 아이의 기다림에 나도 편입이 된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종점만 보면 애써 고개를 돌렸던 사람이 해피엔딩을 원했다.
사실 미용실 문을 열고 발을 내딛을 때부터 울컥했다. 예쁘게 파마를 하면 멋져 보일까 싶었던 내가 가여웠다. 그리고 미용실의 긴 의자에 누워 머리를 감고 있는데 그날이 지난달 눈을 다친 큰 아이가 친구들과 무대에 서는 날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 원래대로라면 서지 못할 무대였다.
둘째 아이를 하원 시키면서 만난 학교 엄마들의 걱정스러운 눈빛도 떠올랐다. 아이가 다친 걸 알고도 차마 나에게 소식을 묻지 못하는 많은 눈빛들. 그 수많은 눈인사들이 나를 위로했었다.
그리고 둘째아이. 오빠를 간호하는 나를 지켜보느라 놀아달라고도 못했던 둘째가 생각났다. 엄마랑 얘기하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참기 위해 책을 읽었다는 둘째의 말이 머리를 하는 내내 맴돌았다.
예보대로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아침부터 아이들의 콘서트가 끝나는 저녁 시간까지 끊이지 않고 아주 조금씩 계속 내려주었다. 나풀나풀 내리는 눈송이들이 느긋해서 좋았다.
그동안 되게 괜찮게 잘 지냈는데. 그 큰일을 겪고도 덤덤했는데. 눈송이처럼 여유로웠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이 결코 단순하지만은 않았던 모양이다.
미.용.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