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소개팅에서 뭘 먹었을까?

by namtip


"정말 죄송한데, 홍대까지 2시간 걸려요."


깜박했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받아보니 소. 개. 팅. 남

주선한 친구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며 '난 죽었다' 하는 찰나.


그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기다릴게요"


주선자가 나를 예쁘고 고운 분이라고 했다며 설레하는 그의 목소리가 부담되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화장은커녕 세수만 하고 직통을 잡아탄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도착한 곳은 홍대입구 6번 출구다.


머리 휘날리며 뛰어오는 나를 보고 그는 한 번에 알아차렸겠지. 상상한 그녀가 아니라는 걸.

그의 표정이 점점 실망으로 바뀌어가는 걸 보고 얼마나 미안했던지. 그래서 2시간이나 기다렸구나. 진작 사진을 보내줄걸.


나를 바라보며 걸어오는 그 남자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수백 번 한 후.

오늘 저녁은 내가 사겠다는 호기를 부리는 그 순간.

그 남자는 이미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며 또 한마디 했다.



"감바스 좋아하세요?"



뭐? 감바스? 그래 모른다. 솔직해지자.

"그런 이름은 처음 들어봅니다!"

군대에 온 것 마냥 씩씩하게 대답할 필요까지는 없었는데...



2000년대 초반. 당시 젊은이들의 성지였던 홍대엔 멋들어진 음식점들이 하루 걸러 하루 생기고 있었는데, 스페인 음식점도 그중 하나였다. 막 홍대에 입문한 대학 새내기에게 감바스는 생소한 음식이었다.


주문한 감바스가 나왔을 때 3초 정도 고민했던 것 같다. 기름에 잠긴 이 재료들을 먹을 수 있을지. 하지만 2시간을 기다린 사람이 앞에 있는데 그게 대수인가. 고무줄이라도 씹어먹어 보여야 될 판이다.


슬쩍 새우를 집어 먹어보니 이게 웬걸. 짭조름한 새우는 질리지 않지, 느끼할 줄 알았던 올리브유는 반대로 풍미가 넘쳤다. 함께 요리된 토마토며 버섯도 생각한 그 이상으로 맛있었다.

원래도 내숭이 없는 데다, 정말 새우를 좋아하기도 했고, 뛰어오느라 배고팠던 나는 올리브유에 푹 빠진 새우를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예쁨과는 다소 거리가 멀고, 고운 분 치고는 살짝(?) 건장했으며, 평균이상의 활발함을 소유했던 나.


우리는 예감했다. 그 해 겨울엔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그와 나는 감바스의 올리브유가 묻어 반들 해진 입술로 망설임 없이 헤어짐의 인사를 했다.



겨울이 오면 시린 옆구리를 채워줄 사랑을 찾아 헤매던 시절.

요즘 커피숍에 앉아 있으면 한껏 차려입고 어색하게 존댓말을 쓰며 설레하는 중인 선남선녀를 가끔 보게 된다.


아줌마가 된 나는 그저 집에서 감바스를 만들어 먹으며 솔로들의 겨울 채비를 격하게 응원할 뿐이다.



감바스 만드는 법


꼭 필요한 재료: 새우, 올리브유, 마늘, 토마토

있으면 좋은 재료: 소금, 후추, 브로콜리, 버섯등의 야채


1) 끓는 물에 새우(혹은 냉동새우)를 먹을 만큼 넣어 데친 후 물기를 제거.

2)아주 살짝 익힌 새우에 소금 후추 간하기

3)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잔뜩 두르고 마늘을 얇게 썰어 넣는다.

(마늘 없으면 생략가능, 다진 마늘도 가능. )

4) 마늘이 타지 않게 주의하며 마늘이 노릇하게 익으면 새우투하.

5) 토마토(모든 종류의 토마토 가능)를 썰어 넣기.

토마토 한두 개는 손으로 꽉 눌러 즙을 내어 넣으면 더 맛있어요.

6) 너무 싱거우면 소금 간, 소금이 없으면 간장 가능. 소금도 간장도 없으면 새우젓도 가능한데

소금, 간장 없는데 새우젓이 있다고?

7) 새우 익으면 맛있게 먹어요.

*취향에 따라 버섯, 프로콜리, 파프리카 등 좋아하는 야채 넣어주기

*매콤하게 먹고 싶으면 고춧가루 살짝 뿌리거나 청량고추도 가능! 페퍼론치노가 있다면 베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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