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바다는 푸른빛일지 모르겠지만 나의 바다는 흙빛이다.
내가 오래 봐온 바닷물엔 늘 뻘이 물속에서 흩날렸다.
손바닥을 펴서 흔들다가 가만히 들어 올리면 진흙들이 손바닥에 뭉쳐있었다.
두 손을 마주 비비면 부드러운 느낌이 나는 그 흙을 모으기 위해 물에 손을 넣었다가 뺏다를 반복하곤 했다.
흙빛 바다는 계속 걸어 들어가도 허리춤이 채 되지 않는 곳이 많았다. 어쩌다 파도가 밀려오면 나도 모르게 발가락을 움켜쥐게 되는데, 고운 흙들이 발가락 사이사이로 들어와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어른이 되어서 오랜만에 가본 동해에선 파도가 달려들었다. 깊고 시퍼런 바다가 익숙한 친구는 이게 진짜 바다라며 양옆으로 손을 벌리고 기꺼이 파도를 맞았지만, 삼킬 듯이 밀려오는 파도에 나는 한없이 뒤로 물러섰다.
나의 바다는 떠오르는 해 보다는 지는 해와 더 잘 어울린다. 늦은 오후, 갯벌의 작은 알갱이들이 붉은빛을 반사하는 걸 보고 있으면 고대인들이 왜 세상은 물에서 시작했다고 믿었는지 알 것 같다. 이 고운 입자들이 나의 본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면 하루종일 내려다볼 수 있다.
검기도 하고 푸르기도 한 그 알갱이를 보며 어디로부터 온 건지 생각한다.
세상의 섭리는 이렇게 작디작은 흙에서 시작했을 까. 위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닌데 혹시 그쪽에서 답이 올까 하늘을 올려보게 된다.
밑에서 시작된 경이로움은 결국 높은 곳을 바라보며 끝나게 된다.
아니다. 나는 그저 하루일과를 마친 태양의 수고로움에 오랫동안 적응이 되었나 보다.
저물어가는 노을의 따스함에 계속 물들어왔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