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별일이 있었다. 의욕 충만하게 신청한 소설 쓰기 수업 말이다. 이제 글 좀 써볼까 하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다고 하여 단번에 돈을 입금했다. 첫 수업 전에 담당 선생님께 메일이 왔고 합평 순서를 정하기 시작했는데 뭔가 심상치 않았다. 1회부터 합평이 시작되는 게 말이 되나? 아무리 순서를 들여다봐도 이해가 되지 않아 따로 메일을 보냈더니 습작 소설이 이미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긴 한데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써가면 되니 걱정 마시라는 답장이 왔다.
주 1회 총 8회 수업에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수업에서 원하는 분량은 A4용지 15장 정도의 분량이었고 더군다나 나는 소설을 써본 적이 없다. 하지만 걱정 말라는 선생님의 말을 믿어보기로 했다. 첫 번째 수업에 들어갔는데 머리가 빙빙 돌았다. 나는 여덟 번의 수업이 끝나도 글을 완성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고 그건 현실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두 번째 수업만에 구구절절한 변명을 써서 환불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합평을 신청한 날이 하루하루 다가오고 데드라인이 3일 남았을 때쯤에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뭘 쓰고 싶은지 전혀 모른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할 말이 있어야 글을 쓸 것 아닌가. 수업을 함께 듣는 분들은 꼭 쓰고 싶은 내용을 글로 옮겼는데 잘 표현이 되었는지 모른다고 고민했다. 그 고민이 어찌나 부러웠던지. 내가 하고 싶은 말,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그 어떤 내용도 떠오르지 않는 압박 속에 합평 순서가 다가오고 있었다.
날밤을 새면 뭐 하랴. 단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머리를 굴려 기존에 썼던 글을 좀 바꿔보자는 꼼수를 부려봤는데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선생님께 글이 써지지 않으니 이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투정 섞인 메일을 보냈지만 돌아오는 건 진심을 담은 응원뿐. 차라리 나를 내쳐주었으면 하는데 할 수 있다고 다독이니 오히려 더 진한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머리를 쥐어짜며 자책하는 몇 날 며칠을 보내고, 일상이 피폐하게 될 즘 나는 환불을 신청했다.
쓰레기 같은 글이라도 써서 제출했어야 했나라는 후회를 할 수도 없다. 말 그대로 한 글자도 쓰지를 못해 모니터에커서가 깜박이는 걸 밤새 보며 앉아있었기에.
환불 후 며칠 뒤. 문득 수업 소개 문구가 다시 떠올랐다. '이제 본격적으로 글을 쓰고 싶은 분'이라는 문장. 그 속에 담긴 무게가 실로 엄청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쓰지 못한 수많은 날을 보내고 작품을 제출한 그분들이야말로 이제 막 운동화 끈을 묶고 뛸 준비를 하는 사람들이란 걸 말이다.
쓰지 못했던 십여 일의 밤을 애도하는 중이다. 그 시간과 마음을 잘 정리하지 않는다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글쓰기는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그저 진부한 표현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