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젠가.
저녁바람에 가을이 딱 손톱만큼 묻어났다. 낮은 매우 더웠으므로 그 요만큼의 가을이 크게 느껴졌나 보다. 하루종일 내 옆에서 종알거리던 직장동료에게 들뜬마음으로 가을이 왔다고 말한 게 섣불렀을까. 이 더위에 무슨 가을타령이냐고 그녀에게 핀잔을 들었다.
내가 너무 서둘렀나 보다 했는데 오늘 그녀가 다가와 어제저녁에 바람이 퍼뜩 서늘해 문득 나를 떠올려댔다.
거봐.
여름 속 가을을 찾아내며 우린 깔깔거렸고 종일 누군가를 미워했다가도 사랑했고, 그것조차 귀찮았던 하루를 곱씹었다.
여름빛과 습도는 타인은커녕 나를 돌보기도 벅차게 한다. 여름이 좋은 이유를 꼭 대라고 한다면 뭐든 나 몰라라 할 수 있는 핑계를 댈 수 있다는 것이다. 더위는 그런 거다. 미룰 수 있는 이유를 주는 고마운 존재이지.
그런데 가을이 슬며시 여름의 자리를 파고든다. 더 이상 어떤 핑계로 게으름을 피울까. 여름동안 나 몰라라 내뱉고 다닌 욕지거리를 어떻게 하면 보기 좋게 주워 담을 수 있을까.
손톱만 한 가을이 둥그런 달로 떠오르기 전에 여름걷이를 좀 해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