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상 기록

아들의 잔소리

아들이 빨래를 시작하면 생기는 일

by namtip

엄마, 양말은 잘 뒤집어서 통에 넣어줘.

내가 지금 빨래 돌렸으니까, 다 되면 건조기에 넣으면 돼.

세재를 다 쓴 것 같은데 언제 살 거야?


11살한테 내가 이렇게 잔소리를 듣고 살 일인가 싶다.



작년 말쯤인가? 아들이 세탁기 돌리는 법좀 알려달라고 하길래 아무 생각 없이 이거 이거 눌러서 돌리면 된다고 말해주었더니 진짜 빨래를 하기 시작했다. 이유인즉슨 엄마가 깜박하고 학교 체육복을 안 빨아 놓거나, 자기가 원하는 옷이 아직 빨래통에 있는 날이 많아졌다는 것.


처음엔 얼씨구나 좋았다. "나는 설거지를 할 테니 너는 빨래를 하거라" 하면 재미있는지 계속 세탁기를 돌려댔다. 남편이 없을 때 대용으로 빨래를 해줄 사람이 생기다니 믿기지 않았다.

아들이 빨래를 하고 건조기까지 돌리는 날이 많아질수록 나의 행복지수도 높아졌다.


그런데 슬슬 문제가 발생했다. 색깔에 상관없이 빨래를 한꺼번에 돌려서 모든 수건이 까맣게 변한다거나 내가 아끼는 니트를 건조기에 넣어서 둘째가 맞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 놓는 일이 발생했다. (둘째는 엄마 옷을 물려 입는 줄 알고 좋아라 했다.) 한 번은 어디서 총 쏘는 소리가 들려서 나가보니 청바지에 돌이 잔뜩 들어있었는데 확인하지 않고 세탁기에 넣어서 난리가 났다.


이걸 말려 말어. 수없이 고민해 봤지만 잘만 가르치면 내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일인데 굳이 하지 말라고 할 건 아닌 듯했다. Go냐 Stop이냐! 결국 난 못 먹어도 Go로 정했다. 그러려면 가르쳐야지. 빨래하는 법을 말이다.


자. 빨래 분류법부터 알려줄게. 속옷은 속옷끼리만 수건은 수건끼리 어두운 색과 흰색은 절대 같이 빨기 없기. 끼리끼리만 기억하면 돼. 알겠지? 이렇게 알려주니 꽤 잘한다.



빨래를 하는 것까진 좋았는데 폭풍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내가 하던 걸 내가 들으니 미칠 지경이다. 나한테 건조기에서 꺼내서 빨래만 개면 된다고 말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놀다가 내가 임무를 수행했는지 확인하러 나온다.


엄마, 빨래 꺼냈어? 아차차 깜박했다. 나도 모르게 변명이 나왔다. 나도 사람인데 다른 일 하다가 못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면서도 내가 왜 얘한테 이런 말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말도 가관이다. 엄마가 항상 먼저 할 일이 따로 있고 나중에 할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되묻는데 입이 안 떨어진다.


흠. 이렇게 사는 것도 하루이틀이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아들을 불러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았다. 네가 빨래를 하는 건 좋은데 잔소리 때문에 내가 못살겠으니 빨래를 그만하던 잔소리를 그만하라는 주제였다. 그랬더니 자기가 한 말은 부탁이었고 엄마처럼 화를 내면서 말한 적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랬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주옥같아서 그날도 마른침만 삼켰다.


그래, 그럼 하던 대로 하자. 아들 앞에서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아주 잘났네 잘났어'라고 하는 걸 들킬까 봐 내심 조마조마했다.


요즘은 처음보다 빨래 잔소리가 줄어서 좀 살 것 같은데 얼마 전 아빠에게 온수사용량을 보는 방법을 배우더니 다시 잔소리가 시작됐다. 이제는 설거지할 때 와서 수도꼭지를 내리며 한마디 한다.


설거지할 때 물 틀어놓고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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