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도 나쁜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땐 그랬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그 조그만 아이를 안고 있는데 막 엄마가 되었다는 나란 사람이 떠올렸던 건 `이 아이도 언젠가 나이를 먹겠지. 주름이 가득한 할아버지가 되겠지.'라는 사실이었다.
한 생명이 태어나서 늙는다는 건 당연한 거니까 이 모든 상황이 특별한 건 아니라며 나를 다잡았었나 보다. 그러니까 꼬물거리는 아이를 앞에 두고 삶의 축이 바뀌지 않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내 선택으로 태어난 아이를 보며 "남들은 아이로 인해 삶이 달라진다고들 하더라. 좋아, 네가 내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야. 그런데 그 영향력이라는 거, 아주 작았으면 좋겠어"라고 선언하는 꼴이었다.
아이가 내 삶을 좌지우지하지 않기를 원했다. 어렵게 태어난 아이였지만 아이로 인해 인생의 중요한 선택들을 바꾸지는 않겠다는 지키지 못할 약속도 했었다. 나의 엄마는 모성애가 가득하고도 넘치는 사람인데 그 사랑을 오롯이 받고 자란 내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죄책감이 들었다.
그렇게 애를 쓴 걸 보면 이미 나는 체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뱃속에 아이가 생긴 그 순간 모든 게 바뀌었다는 걸.
아이가 먹고도 남을 만큼 모유가 나왔다. 남들이 어렵게 젖을 먹일 때 나는 남아도는 모유를 걱정할 만큼 내 몸은 모성으로 가득했다. 머리와 몸이 따로 놀았다. 내 모성애는 모유만큼도 못한다는 자책 속에서도 아이는 젖을 먹고 풍요롭게 자랐다.
익숙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격렬한 내적 동요를 동반하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 중략... 인생을 결정하는 경험의 드라마는 사실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할 때가 많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中)
내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은 고요했을까, 아니면 요란했을까.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모성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이가 할아버지가 되는 상상을 했던 그때를 떠올렸다. 아이가 태어났어도 참으로 고요하게 내 인생을 흘러가게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아이는 아직 내 인생을 바꿀 만한 결정적인 순간에 속하지 않는다는 자만도 함께했었다.
왜 인정하지 못했을까. 아이가 내 안에 온 순간 그냥 사랑하면 될 것을. 아니 이미 사랑하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알려줄 것을. 축적된 감정들을 뒤늦게발견하곤 이렇게 뒤통수를 얻어맞는다.
내가 지키고 싶었던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처럼 깨달음이 늦된 사람은 아무리 되짚어봐도 지금은 모른다. 언젠가 내 무의식을 걸터듬게 할 글귀를 만나길 기도할 뿐.
다시 책장을 넘긴다. 문장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며 묵은 감정들을 수면 위로 떠올려주길 기대한다. 그리고 뒤늦은 고백을 시작할까 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