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안에서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을 보다
이렇게 몇 주간 경험한, 스코틀랜드의 자연은 그저 '아름다움'만으로 설명하긴 어렵다.
그 안에 처연한 쓸쓸함과 아픔이 있다. 그래서 연상된 작품이 바로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질퍽대는 moorland와 아무도 살지 않는 벽돌집, 음울한 분위기, 카뮈의 <이방인> 뫼르소에게 '살인'의 동기가 됐을 것만 같은 그 강렬한 햇빛,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런 것들이 만나는 이곳에서, 강렬한 사랑과 광기의 대명사로 묘사되는 히스클리프라는 캐릭터가 만들어졌을 것 같다.
멋진 기암절벽, 끝없이 펼쳐진 초록의 향연, 군데군데 애교를 부리듯이 피어 있는 들꽃까지 가세하면, 이곳의 여름은 그야말로 천국이다.
유리를 덮어 놓은 듯한 맑은 물. 조약돌이 가득 깔린 해안을 사진으로 찍으니, 마치 추상화를 보는 듯하다. 인간의 발길이 닿기엔 너무 외친 곳이라서 그렇겠지만, 창조주의 선물처럼 보인다.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대학 전공으로 배웠고, 오래전에 카야 스코델라리오 주연의 <폭풍의 언덕>을 작업하기도 했다. lovesick / agony / in the other world / inconstant lover 마지막 대사 'I am Heathcliff.'가 생각난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배경은 요크셔, 작가에게 어언쇼 하우스 영감을 준 집은 Top Withens라고 한다.
핑크 헤더 꽃, 구릉지고 평화로운 언덕, 발이 쑥쑥 들어가서 참으로 걷기 힘든 Boggy Moorland, 외롭게 서 있는 주인 없는 농가.
놀랍게도 스코틀랜드 곳곳에서도 유사한 풍광을 너무 쉽게 볼 수 있다. 19세기부터 가난으로부터의 대탈출이 이어진 이곳. 캐나다로 수많은 사람이 이주하면서 남겨진 주인 없는 쓸쓸한 돌집들. 아직 헤더 꽃이 만발하지는 않았지만, 하루에 열병과 동상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이 아이러니한 기후까지 곁들어진 이곳은, '히스클리프'의 열상 걸린 강렬한 사랑과, 어둡고 야만적이기까지 한 폭력적인 세계를 만들어낸 공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