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진영 긍정에너지 Aug 16. 2023

인생 로밍 여행-
스코틀랜드 아우터헤브리디스(3)

쉼표가 있는 도로, 그 길을 가는 사람들

쉼표가 있는 도로그 길을 가는 사람들        

   

1) 따뜻함 루이스섬 North Bell인구가 급격하게 줄면서 예전 초등학교가 community center로 리모델링 되어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카페테리아도 운영하는데그날 그 마을 청년인 듯한 다운증후군 청년 한 명이 혼자 찾아왔다이곳 직원은 너무 반갑게 청년을 안아주시고 서빙하셨다혼자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마음이 따뜻해졌다     

Charity Shop은 동네 사랑방처럼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웃을 돌보는 얘기를 나눈다주일날 교회에서 만난 아저씨가 거기에서 나를 금방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사실 난 못 알아봄주일엔 양복을 입고 계셔서... 쏴리함당외부인에 대해서 배타적이지 않고누구나 친절하다          


2) 우체통 친화적인 마을      

핸드폰의 대중화로사라진 것 중 하나 우체통이곳 스코틀랜드 아우터헤브리디스에서는 인적이 드문 산길민가 없는 들길에도빠지지 않고 우체통이 있다.

 

정감 가는 우체국

각 우체통에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우편물 수거하는 시간이 안내되어 있다우체국 아저씨에게 물어봤더니정확하게 칼같이 그 시간에 우편물을 수거한다고 한다아직도 우편물을 보내고 받는 문화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그래서 Royal Mail Service라고 하나 보다.     

작은 마을 우체국은눈에 띄지도 않는 작은 집이다. (고객이 별로 없어서용무가 있으면 벨을 누르라는 안내문이 붙었고하루에 2시간만 근무하는 우체국도 있었다    


 

지난겨울 서해안 소청도를 여행할 때가 생각났다인구 200명이 안 되는 그곳의 우체국은 9-6시 열려 있었다우리 둘이 소청도 우체국에 들어갔더니 직원 두 분이 놀라서 벌떡 일어나셨다엽서 한 장을 사서 네덜란드로 보냈는데직원분 말씀이 '여기 근무한 3년째인데처음 해 보는 업무'라고 하면서 웃으셨다     

손님이 없어도 늘 열어두는 소청도 우체국좋았다     

벨을 눌러 주세요~




3) 교회      

우체통만큼 많은 게 교회였다인구 1100명 정도 마을에 교회가 4분리에 분리를 거듭하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한다내가 간 곳은 Cross Free Church of Scotland, 주일엔 정장을 차려입고모자까지 쓰고 오신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나처럼 등산복 차림의 방문객도 진심으로 환영했다     

교육의 기회와 일거리를 찾아 대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많아서교회는 아주 소규모지만대형 교회 세습문제로 고민할 필요 없는 이곳은남아있는 자들의 끈끈한 연대의 고리가 되는 것 같다  

   

성 몰루아그 교회(St. Moluag's Church). 천년 넘은 교회 터에 여러 번 증축한 정말 작은 교회지금도 한 달에 한 번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흥미로운 건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가톨릭 성당이 더 많이 눈에 띈다는 것이다     

캠프 사이트 주인아저씨는 떠나는 날까지 나를 붙잡고남편 개종시키라면서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4) 스코틀랜드 정체성      

   

수백 년 잉글랜드와 전쟁을 거듭한 후결국 United Kingdom에 병합된 이들의 정체성은 어떨까     

아직도 스코틀랜드 깃발만 올린 집이 간혹 보인다

 

South Uist 작은 강당에서 열린 Calum Alex Macmillan와 Ross Martin 콘서트스코틀랜드 전통 악기와 기타를 연주하면서게일어 노래를 불렀다. Macmillan은 자신의 할아버지삼촌사촌 얘기를 하면서구슬픈 멜로디를 이어갔다모든 노래에는 사연과 서사가 가득했다    

 

1750-1900년 사이 캐나다로 이민 간 스코틀랜드 사람은 2만 명에 육박했다폭풍우감자 농사 흉년켈프 사업 쇠퇴 등으로정말 '먹고 살려고그 먼 땅으로 떠나야 했다증기선이 나오기 전범선(Sailing boat)으로는 70여 일이 걸리던 그 먼 길

게일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그 멜로디에는 고향을 그리는 향수와 아픔 등이 그대로 느껴졌다콘서트를 함께 보던 어르신들은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따라 부르셨다

한치의 미래도 알 수 없던 그 시절가족과 고향을 떠나야 했던 그들의 서글픔과 향수에 나까지 빠져들었다     

강제 징용당했던 우리의 할머니할아버지들도 그런 아픔을 겪으셨을 것 같다     




자그마한 콘서트


5) Passing Place : 


이곳은 거의 1차선이다통행량이 많지 않은 걸 고려해서 이렇게 만든 것이다반대편 차선에서 차가 올 때를 대비해서 거의 100m 간격으로, 'Passing Place'라는 간판과 함께 차량 두 대가 지나갈 만한 공간을 갖춰 놓았다먼저 본 운전자가 차를 세우고 상향등을 살짝 켜면마주 오던 차량은 저속으로 그 지점을 지나가면서양보해준 상대 차량 운전자에게 손을 들어 인사한다     

현지 차량은 운전석이 우측이고차량 좌측통행이기에다양한 운전자들 반응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핸들에서 손을 떼지 않고 (영혼 없이검지 혹은 엄지만 살짝 올리는 사람엄지는 핸들에 걸치고 나머지 네 손가락을 올리는 사람활짝 웃으면서 손을 마구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아마 어디를 바삐 가는 중인 듯). 간혹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는 운전자도 있었는데내편의 반응 'Oh, what a grumpy old man!' 혹은 '어느 나라 인간일 거야!' (어느 나라인지 밝힐 수 없음)     

이런 교통 문화는 모든 운전자를 '한 템포쉬어가도록 만든다인구밀도 9라니... 정말 인적이 드문 곳이긴 하지만거의 모두가 자가 차량으로 움직여야 하는 이곳에서 도로의 '퍼즈 장치'는 작은 삶의 여유를 생산하는 건 아닐까     

어디 가나 보이는 인생 쉼표 


6) 캠핑은 즐겁지만가끔은 사건 사고... 우리 인생처럼    

 

6월 10-12일 해리스 섬      

갑자기 급수 펌프가 망가졌다탱크에 물은 있지만 펌프가 작동을 안 하니 최악의 경우엔 물 배수관에 통을 넣고 물을 받아서 사용해야 할 지경

한국에선 보험사에 전화하면 어떻게든 차량 긴급 서비스가 도착하지만이곳은 딴 나라 아닌가

하필이면 주말이라서어디에도 연락이 안 됐고캐러밴 렌트 회사에 전화번호를 남겼더니 다행히 답신이 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파악하고 전화번호는 받았다식수는 충분해서일단 하루를 버티고다음 날은 캠프장으로 가기로

그런데 여행 시작 기간 중 처음으로 밤새 비가 오더니 다음 날도 비가 추적추적한군데 캠프장은 자리가 없다고 하고다음 캠프장을 찾아간 후차를 세웠는데전날 폭우로 전봇대 하나가 망가지면서 온수가 안 된다는... 어제 잔뜩 땀 흘리고 씻지도 못하고 잤는데... 대략 난감 

 

내편님이 몇 시간 끙끙대더니 결국 펌프를 교체했다스페어용 펌프도 싣고 다니는 건 처음 알았다저녁때 전기 수리가 되어 캠프장 온수도 나왔다행복한 샤워...      

다음엔 어디로... 갈지는 나도 모른다

매번 선물이라고 생각한다여행에 당위적 권리는 없다     


글래스고에서 페리 선착장으로 가던 길에교통사고를 너무 가까이에서 목격한 후부터 더욱 그런 생각했다

승용차와 대형 트럭의 정면충돌우리가 그 지역에 도착하기 2분 정도 전에 발생한 사건이었다바로 앞의 캠핑 차량 가족은 모두 도로에 나와 있었고애들은 급정거에 타박상을 입고 너무 놀라 울고 있었다     

도시에서 한 시간 거리인 좁은 2차선 도로라서 구급차 접근이 어려웠고도착한 경찰이 헬기를 요청하는 걸 보고 우린 그곳을 떠났다     

삶의 메커니즘이 예기치 못하게 망가지면 고쳐서 쓸 수도 있지만정말 돌이킬 수 사건도 종종 일어난다     

그런 의미에서...     


Yesterday's the past, tomorrow's the future, but today is a gift. 

That's why it's called the present.


모두 '오늘'이란 녀석을 선물로 마구 즐기기를 바란다     

중세 시대 교회 마당

(

작가의 이전글 인생 로밍 여행- 스코틀랜드 아우터헤브리디스(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