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형식적인 면에서 정교하다. 1년반에 걸쳐 각기 다른 세 곳의 문학잡지에 게재한 세 개의 단편소설이 입체파처럼 연결되어 있다.
각각의 단편소설도 흥미롭지만 일찌감치 연작소설로 묶어 출판할 걸 염두해 두고 이야기를 풀어나간 그녀의 마케팅 노림수가 대단해 보인다. 다음 단편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필연적 장치들을 미리 풀어 놓고 인내심을 갖고 찔끔찔끔 떡밥을 던지는 그녀의 글낚시질에 세계인이 딱 걸려 들었다. 맨부커상 수상자답다.
단어 선택 또한 탁월하다. 자랑스런 민족연세 국문학도 출신답게 생경하면서도 신선한 단어들로 촘촘히 찍은 점묘화 같은 글을 그려 낸다. 가령 '살풍경'하게, '적요'한 햇살, '교교'한 집, '열락'속에서, 햇빛은 계속 '사위어', 꽃잎들이 '분분히' 떨어져내렸다, 맵고 '시큰'한 냄새, 배냇내, 가슴께 등 말이나 글로 지금껏 내가 써보지 않은 단어들이지만 이미지의 채도는 더욱 높아진다.
미려한 표현의 문장들은 셀 수 없을 정도다. '힘이 없는 덧없음', '관능 없이 벌어진 허벅지', '육체만으로 그토록 많은 말을 하는 육체', '체념의 앙금이 우울함으로 가라 앉는', '널 삼켜서, 녹여서, 내 혈관 속을 흐르게 하고 싶다'... 특히 그녀는 에로티즘에 있어 가히 콰트로 엑스급 야수파다. 직접적이거나 저속한 단어나 문장은 일절 배제한 채, 뼈마디가 녹아 들 정도로 야릇한 느낌을 주는 그녀의 성적 묘사가 내 모든 감각을 곧추세우며 무장해제 시켜 버렸다. 특히 압권은 처제와의 정사 표현. '즙'과 '풀물'이란 단어는 그녀로 인해 이제 19금 단어가 되버렸다.
마지막으로 주제 의식이다. 이런 심오한 평론을 하기엔 내 문학적 소양이 너무 낮다보니 소설 마지막 부분에 있는 허윤진 문학평론가의 해설을 일독할 것을 추천한다.-그녀의 필력 또한 놀랍다-허윤진 평론가님의 글을 대충 짜깁기해보면 이렇다.
그저 몸이 일러주는 대로 소박한 원칙을 실천했던 그녀에게, '채식주의자'는 사람들이 그녀의-비정상처럼 보이는-행위를 이해하기 쉬운 속성으로 환원한 호칭에 불과하다.(=낙인). 다수의 강요와 횡포란 인간의 야수성을 감지하면서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 힘들었던 영혜에게 남은 일은 인간에서 비인간으로의 '퇴행적 진화'를 통해 '살아있는 화석, 즉 나무가 되는 것 뿐이다.
정상성을 벗어난 인물(=영혜)을 찾아나선 '정상적' 인물(=영혜 친언니)들은 스스로 감추었거나 잊었던 트라우마와 조우한다. 마치, 애초에 그들이 그토록 닿으려 했던 목적지가 그 깊은 상처였던 것처럼.
내가 쓰는 주제 한 줄 요약 : 정상인 듯 정상 아닌 정상 같은 나, 너 그리고 우리
열정은 예기치 않은 사소한 계기로 점화된다는 평론가의 표현처럼 오늘 이 한 권의 책이 소설에 대한 나의 열정에 부싯돌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