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계형변호사'라는 짠내 나는 타이틀을 걸고 하나마나한 잡소리를 늘어놓게 된 건 순전히 재미 때문이었다.
좋든 싫든 꾸역꾸역 먹어온 이 바닥 짬이 어느덧 찰만큼 차고 나니, 나는 이제 월급쟁이에서 퇴출되어 어엿한 자영업자로 거듭나야 할 위기에 몰려 있었는데, 내 주변엔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 치는 고마운 지인 같은 건 단 1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태생이 만렙 아웃사이더인지라 생판 모르는 사람이랑 소주잔 털어가며 순식간에 형님, 아우 도원결의를 맺어대는 영업 따위 세상 질색팔색이었고, 그 덕에 지금의 내 상황은 고구마 한 상자를 한 입에 털어 넣고도 건빵 스무 봉지를 더 씹어야만 하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렸을 때에는 다 필요 없고 공부만 열심히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잘 먹고 잘 산다는 선생님 얘길 그런대로 믿고 살았는데, 나잇살 좀 먹고 돌이켜 보니 우리 선생님은 구라쟁이가 확실했다.
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잘 먹고 잘 살만큼 공부를 열심히 안 해서라기 보단, 사실 열공과 훌륭한 사람 사이에는 처음부터 그다지 상관관계가 없었던 것이고, 나는 이 간단한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은 거다.
'나만 그런 건 아닐 거야'라고 부질없는 셀프 위로를 던져보아도, 어쩐지 내 인생이란 늘 시험의 연속이었고 늘 고비를 맞아왔으며 매일이 그날의 수습으로 대충 채워졌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세상만사 따위 모조리 될 대로 되라는 식의 지독한 귀차니즘과 매너리즘에 빠져 살게 되었다.
문득, 이러면 똥망 하겠다 싶은 생각에 남들 경험담이라도 들여다볼 겸 서점을 찾기도 했지만, 밑도 끝도 없이 '다 잘될 거야 걱정 마'라든가, 첫 장부터 막장까지 의문만 더해지는 '성공의 비법'이라든가, 그도 아니면 몹시 전투적인 제목을 내건 채 '이래라, 저래라' 하는 식의 의미 없는 이야기만 가득해 이미 활활 타오르는 매너리즘에 기름을 부을 뿐이었다.
나는 왠지 조금 서글픈 마음이 들었는데,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진짜 훌륭한 사람들의 진짜 성공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나는 그냥 하나마나한 잡소리가 듣고 싶고 하고 싶었다. 오늘이 월요일인지 금요일인지 따질 필요조차 없는 이 뻔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나는 뭔가 소소하게 재미있고 싶었다.
그때, 하루에도 수십 번씩 초점 없는 눈으로 멍하니 웹질이나 하던 그 쓸모없는 순간에, 우연히 이 공간을 발견해버린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 되었고, 지금까지 나는 해봐야 백해무익한 잡소리를 아무렇게나 써댔다.
그래서 이 공간에 써제낀 글은 누가 읽더라도 그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된다. 아니 될 리가 없다. 처음부터 누구 인생에 도움되라고 쓴 게 아닌 걸.
하지만 "아, 이 병맛 신선했다." 할 정도의 재미는 있었으면 좋겠다.
B급 감성이라든지 B급 드립의 가치는 의미가 없을수록 빛이 나는 법이니까.
광란의 불금이 지나면 다음날 찐한 현타가 찾아오는 것처럼, 이 공간을 통해 소소하게 즐겨왔던 하루의 삽질을 마치면 내일은 어떻게 수습하지 따위의 고민이 소떼처럼 몰려온다.
어쩐지 정의로울 것 같고, 어쩐지 입바른 소리만 해댈 것 같고, 그럼에도 왠지 고상하고 여유롭고 풍족할 것 같은 잘 포장된 변호사의 이미지는 현실 생계를 꾸리는 평범한 변호사의 삶과 큰 괴리가 있다.
오히려, 내가 맞이하게 될 보통의 '내일'이란, 몇 번을 집어던져도 꿋꿋이 알람을 외치며 일어나라 채근하는 핸드폰,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에누리 없이 꽉 채워진 지하철, 울퉁불퉁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는 우리 고객님 뭐 이런 것들이다.
그러다 때가 되면 우르르 몰려가서 아무거나로 점심을 때우고, 나른한 기분에 슬금슬금 하강하는 눈꺼풀을 애써 추켜올리다 재판이라도 다녀오면 어느새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을 것이며, 야밤에 홀로 남아 답도 없는 사건 기록과 사투를 벌이지만 결국, 만사가 부질없어 다 집어던진 채 집에나 가고 싶어질 거다.
'나는 어쩌다 이 바닥에 들어서게 되었을까.'
'나한테 이 바닥이 맞기는 한 걸까.'
'나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자나 깨나 늘상 하던 고민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늘까지 별 탈 없이 수습해서 다행이야.'를 되뇌다 보면 마법 같은 정신승리가 찾아와 일말의 안도감을 주곤 하니, 아직은 이렇게 사는 것도 영 못해먹을 정도는 아닌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