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 Out, 2017
단순한 이야기에 수없이 많은 상징과 은유가 겹겹이 쌓였다. (보는 내내 흥미로웠지만, 딱 해석하기 좋게, 그리고 해석하고 싶게 만든 영화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프레임에 가둔 흑과 백이 끊임없이 대칭을 이룬다. 흑과 백이 대립하게 된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 다르다고 보는 프레임 때문임을, 틀(프레임)로 가득 찬 미장센을 통해 보여준다.
영화는 이 수많은 프레임들 속에 인물을 가두어 두는 방식으로 카메라 앵글을 둔다. 이는 실제로 아미티지 가족에게 붙잡힌 크리스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임과 동시에, 그가 흑백의 대립이라는 관념의 프레임에 붙잡혀 있음을 암시한다. 이 프레임은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화면 속의 수많은 틀 중에 가장 바깥에 존재하는 틀은 바로 관객들이 보고 있는 ‘스크린'이다.
이제 부지불식간에 최면에 걸려 TV라는 프레임 하나 밖에 없는 방에 갇힌 것은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들이 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바깥세상은 작은 창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침잠의 방에 빠진 것도 관객들이 된다. 침잠의 방은 아무리 봐도 어둠 속에서 영화 스크린을 보고 있는 관객들 같지 않은가. 크리스가 프레임에 갇힌 것처럼, 관객들은 인종차별이라는 인식의 프레임에 갇힌 채 영화 속에 강제로 참여하게 된다. 이를 피해자의 관점으로 보든, 가해자의 인식으로 보든, 그것은 해석의 자유다. 어차피 세상이 이렇게 생겨먹은 것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개인들이 뒤엉켜 있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겟 아웃’은 편안한 소파에 앉은 관객을 영리하게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관객이 능동적으로, 또한 적극적으로 틀을 부수는 사유를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육체라는 껍데기만 남아 '침잠의 방’의 갇히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