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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seo Apr 14. 2020

캡틴 마블 - 메시지로는 대체되지 않는 정체성

Captain Marvel, 2019


똑같은 거푸집으로 찍어낸 양산형 히어로에게 성별이 그리 중요한 문제일까? 얼마나 올바르게 바뀌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 있어 정작 중요한 건 '정치적 올바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캡틴 마블'은 기존 히어로 무비와 같은 문법을 채택하고 있지만 충분히 쌓아올리지 않은 드라마, 밋밋한 이야기 전개 등에서 결함이 드러난다. '캡틴 마블'을 어떤 영화로 받아들일지는 관객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지만, 기본적으로 영웅적인 인물이 등장하는 히어로 무비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은 충족시켰어야 한다고 본다. 그것이 MCU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히어로라면 더더욱.



가장 큰 문제는 캐릭터의 개성이나 히어로로서의 고유한 정체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MCU의 다른 솔로 무비들은 각자 개성을 갖고 있다. 유니버스 전체를 지탱하는 아이언맨 시리즈를 필두로, 다양한 스타일로 진화를 거듭해 '라그나로크'에서 레트로 감성의 우주 어드벤처로 자리 잡은 토르 시리즈, 선악의 문제에서 마블의 세계관을 정립해온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까지, 다른 히어로로 쉽게 바꾸어 끼울 수 없는 스타일을 정립하고 있다. 10대 성장담과 히어로 서사를 맞물린 스파이더맨, 히어로의 특수 능력에 기반해 아기자기한 코미디를 선보이는 앤트맨, 흑인 저항 문화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블랙 팬서, 우주 어드벤처 활극 가오갤 시리즈도 고유한 영역을 점하고 있다. '캡틴마블'도 그런 캐릭터도 갖추지도, 히어로로서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지도 못했다.



'캡틴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안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게 아니었다면 굳이 볼 이유가 있었을까? 다시 말해, '캡틴 마블'은 MCU의 포장을 벗겨내고 나면 단독 영화로서 매력이 없다는 얘기다. 매력 없는 영웅을 '여성', '난민'이라는 키워드가 대체할 수는 없다. 이를 시대정신의 반영으로 볼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소재 선택에 불과한 것으로 볼지는 취향의 문제다. 하지만 이 영화가 내세우는 페미니즘 메시지는 '끼워맞추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제대로 구축되지도 않은 캐릭터에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수식을 붙이는 건 과한 호들갑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나온다고 해서 페미니즘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페미니스트가 곧 영웅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비교할 때, '블랙 팬서'가 흑인이라서 히어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에 반해 '캡틴 마블'은 여성 히어로니까 다 된 것 아니냐는 식이다.



굳이 이 영화에서 유의미한 페미니즘 메시지를 찾자면, 현재 최고의 프랜차이즈를 선보고 있는 마블이 여성 원톱 히어로를 제시했다는, 그 사실 정도가 아닐까. 정치논리가 문화 콘텐츠에 잘못 개입되면 길을 잃게 마련이다. '엔드게임'은 그럭저럭 훌륭하게 마무리되었지만, 2기 어벤져스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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