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행복이 제일 중요합니다.
신이 너무 바빠서 자신의 손길이 다 미치지 못하는 곳에 '어머니’를 보냈다.
어머니의 사랑과 헌신을 칭송하는 말일 테지만 반대로 그런 얘길 듣는 어머니들은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생각해보자.
아름다운 표현 이면에는 무서운 인습과 폐단이 숨어있을 수 있다.
다른 나라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나라는 대대로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을 강요해왔다.
우리 부모님 세대까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게 당연시되었고 평생을 시부모와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야 했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가부장적이고 살갑지 않았으며 아내의 희생을 요구하거나 방관했다.
여전히 대부분의 독박 육아는 엄마들의 몫이며 남편들은 주말에 가끔 도와주면서 생색을 낸다.
조선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나 역시 그리 좋은 남편은 아니어서 집사람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다.
시부모와 남편과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던 어머니가 폐암 판정을 받으셨다.
살면서 흡연은커녕 간접흡연도 안 해보신 분이 폐암이라니...
이런 일들은 언제나 갑작스럽게 다가온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는다.
자식이 50세 전후가 되면 부모 세대가 떠날 채비를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아직 10년은 더 건강하시겠지라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나의 무책임과 무지함에 후회를 하게 된다.
시차의 차이가 있을 뿐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일일 수도 있기에 담담하게 대응하려고 노력 중이지만 역대급 멘붕에 잠도 잘 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어머니를 힘들게 했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일들을 원망했다.
어려서부터 내가 목도했던 어머니가 힘들어했던 순간들, 어머니를 괴롭혔던 사람들이 계속 떠올랐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어머니가 늙고 병든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다.
어머니는 나 때문에, 나를 지키고 키우기 위해 그 모든 고통과 희생과 부조리함과 억압을 참고, 희생하고, 버틴 것이다.
이제 잘 되어 효도하겠다는 생각은 부질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단 한 가지 원하는 것은, 어머니가 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항암 치료를 잘 받으셔서 남은 여생을 남편이나 자식을 위한 게 아니라 본인만을 위해 이기적으로 자유롭게 사시는 것이다.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본인 이름으로 삶의 지평을 넓히면서 그동안 참아왔던 모든 것, 하고 싶은 모든 것을 다 하시면서 사시는 것이다.
그게 아들로서 해야 할 마지막 역할이자 보답이자 책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부디 본인이 바빠 어머니를 세상에 보낸 그분께서 어머니께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어머니. 희생과 헌신은 그만하세요. 자신을 위한 삶을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