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의 재해석
며칠 전에 생일이었다.
기러기 아빠의 쓸쓸한 생일은 가족들의 전화와 지인들의 메시지를 받고 감사하게 끝이 났지만
사실 언젠가부터 생일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오히려 축하를 받으면 민망하고 창피하다.
20대에는 누구 생일이라고 하면 십여 명이 모여 다 같이 술도 마시고 생일 축하를 했던 것 같다.
30대에는 거창한 파티는 아니더라도 직장 동료나 가족들과 작게나마 생일 케이크의 촛불이라도 불었는데
이제는 생일이라는 게 아무 의미가 없게 느껴진다.
어찌 보면 만으로 한 살 더 늙어간다는 의미라 기분 좋은 날이 아닐 수도 있다.
생일, 백일잔치, 돌잔치, 환갑, 칠순과 같은 기념일들이 과거 못 먹고 힘들던 시절 한해 한해 무사히 살아남았구나를 의미하고 서로 축하하기 위해 만든 날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날만큼이라도 다 같이 모여 잘 먹자는 의미도 있고 생일에 굳이 케이크를 먹으려고 하는 건 발렌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처럼 상업적 마케팅의 결과물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의학이 발달하고 수명이 늘면서 점차 사라지거나 간소화해지는 기념일도 생기고 있다.
생일의 의미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생일이라는 것이 누군가가 세상에 태어나서 축하를 주고받는 날인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태어날 때에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고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작 십여 시간 동안 진통을 느끼고 죽을 만큼의 고통을 느끼면서 대단한 일을 해낸 사람은 엄마들이다.
고로 자식의 생일에 축하를 받을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이 세상의 엄마들이다.
살면서 본인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모진 풍파를 겪을 때가 있다.
그런 와중에 생일날이 되면 이런 못난 생각까지 할 때가 있다.
'나를 왜 태어나게 했을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지만 부모님께 너무도 죄송하고 후회되는 생각들이다.
세상의 엄마들은 정말 위대하다.
하느님이 너무 바빠서 자신의 손길이 못 미치는 곳에 엄마를 보냈다는 말도 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암투병중에도 아들 끼니 걱정만 하시는 우리 엄마도 대단하시고
아들 둘을 낳고, 지금은 그 녀석들을 데리고 타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우리 마누라도 대단하다.
그동안 생일이랍시고 축하나 선물을 받으려고 했던 것에 창피한 생각이 든다.
이런 생각을 사십 대 후반이 돼서야 하다니 이것 또한 창피하다.
내년부터 생일에는 내가 축하를 받으려고 하지 말고 엄마에게 나를 낳으시느라 수고하셨다고,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려야겠다.
그리고 내 생일때마다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앞으로 30년 정도만 더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자식의 생일에는 세상의 엄마들이
선물을 받고 축하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