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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Apr 06. 2020

시각을 버리고, '열린 귀'를 얻었습니다

경청의 중요성

"아기가 이러쿠 마꾸 해또"

"아빠~ 가래구뚜 마이래또."

답답합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35개월 다은이는 본능적인 욕구외에는 말로 표현을 잘 못합니다. "아기 배고파. 졸려. 하나만 더 줘. 나가자. 조아 " 명확한 의사 표현은 잘합니다. 그 외는 알아들을 수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이 통하지 않는 경우엔, 아이는 손을 잡아끌고 가 원하는 것을 가리키거나 행동을 취합니다. 그래도 못 알아들으면 눈물을 흘립니다. 커뮤니케이션의 부재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그녀도 얼마나 답답할까요. 알아듣지 못하는 부모도 답답합니다.


비단 말 못 하는 아이와 부모 사이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 큰 성인에게도 해당됩니다. 지난 주말 드라이브를 위해 가족이 모두 근교로 떠났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커피와 음식은 모두 드라이브 쓰루로 해결합니다. 좋아하는 커피를 주문한 와이프는 즐거워 보였습니다. 다행히 커피를 내려놓으며 컵홀더에 쏟을 뻔한 불상사도 모면합니다. 그때 갑자기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생각났습니다.

"여보, 어떤 분 여자 친구가 차량 컵홀더에 음료를 쏟아 기어박스를 교체했데. 진짜 난감하겠다. 조심해야겠다. 그지? "

"난감할게 뭐 있어? 청소하거나 교체하면 되지. 남자들은 차에 엄청 민감해하더라 "

어쩌다 대화가 본질을 떠나, 젠더 차이로 흘러버리고 맙니다. 거기서 마무리했어야 하는데 좌뇌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말을 뱉어 버렸습니다.

".. 그러니깐 자기 말은 남자 친구가 샤넬백에 커피를 쏟았는데, 그게 무슨 문제야? 세탁하면 지랑 비슷한  같은데? "

스스로 아차 싶습니다.

"여자든 남자든 서로 입장의 오해가 있나 봐 "

한 박자 느리게 무마해보지만 때는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30여 분간 무언 속에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흐트러지는 벚꽃들은 차량위로 아름답게 날렸습니다. 아름다움에 젖은 건지, 기분이 다운된 건지 그녀의 마음은 알 수가 없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충돌은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합니다. 형태가 없는 말인데 사람을 오해하게 만들고, 분위기를 침체시킵니다. 그 순간 아이가 구세주입니다.

"엄마~ 이구가호 마꾸해떠"

"응~ 다은이 그랬어? 지금 이제 집에 갈 거야. 다은이 배 안 고파? "

"웅. 아기 배고파"

간간히 딸아이가 뒷자리에서 알아듣지 못할 말로 반응해주니 차가웠던 분위기가 조금씩 누그러듭니다. 아이의 의미 없는 말도 이럴 때 참 힘이 있습니다. 말의 형태가 어떻든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는지 경청해 주고 의사를 골똘히 생각하고 응대하니 아이와 소통에도 문제가 없습니다. 그렇게 또 햄버거를 주문하기 위해 드라이브 쓰루로 향합니다. 적절한 당 섭취와 함께 주고 받은 이야기를 통해 다시 평상시로 돌아온 것아 다행입니다.


우리는 편견에 둘러 쌓여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말을 하는데 누군가는 A를 말하고, 다른 이는 B로 해석을 합니다. 아이처럼 못 알아들을 말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자주 오해가 발생합니다. 혹은 말도 하기 전에 뉘앙스만으로도 판단하기도 합니다. 경청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을까요. 알아들을 수 없는 아이의 말도. 특별한 저의가 없던 그녀의 말도. 말의 형태가 어떻든 상대방 소리에 귀 기울여야겠습니다. 경청하는 만큼 그녀의 목소리와 마음이 정확히 전달 될테니 말입니다. 아이와 와이프의 대화를 통해 또 새롭게 한수 배웁니다.

 




시각을 포기하더라도, 경청의 하는 법을 포기하면 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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