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일교차가 심한 그녀
벚꽃이다. 매년 피는 벚꽃이지만, 봄철 잠깐 스쳐 지나간다.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안타깝게도 아름답게 피었던 꽃들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짧아서 더 아름다운 벚꽃이다. 벚꽃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영접할 시간이 짧아서 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첫눈은 아름답고 고결하지만, 오랫동안 쌓인 눈은 지루하고 귀찮은 것을 보면 분명하다. 벚꽃이 12개월 중 반만 피어 있어도 지금처럼 아름답지 않을 거다. 그런 의미에서 벚꽃은 영리하다. 상대에게 사랑받는 방법을 아는 놈이다.
가까운 근교에 벚꽃을 구경하러 갔다. 사람이 없는 한적한 곳으로. 꽃들이 첫인사를 한 지 2주가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잔혹한 계절이다. 코로나만 없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더 사랑해줬을 텐데... 그래서 더 애틋하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다. 정말 마음 깊숙이 우러나와 와이프에게 말을 건넸다.
" 정말 예쁜 계절이다. 자기처럼. "
엊그저께 생리를 시작해 응대가 건조했던 그녀는 은유로 받아친다.
" 응. 변덕이 심한 계절이지? "
속으로 YES라고 대답하면서, 말을 건넸다.
" 그래서 더 아름다운지도 모르지 "
실제로 그렇다. 와이프는 변덕이 심하다. 일교차가 심한 봄철 같다. 한 달에 평균적으로 기분 나쁜 기간이 2번쯤 오는데, 평균 3일 정도 되니, 거의 열흘에 한 번쯤 그날이 온다고 생각하면 된다. 아프다고, 기분 안 좋다고, 딸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그냥... 이유도 다양하다. 이제 익숙해져서 그 기간 동안은 밀린 설거지나, 가정일을 해주거나, 애랑 오랫동안 놀아 주거나, 그냥 입 닫고 조용히 있으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결혼이 처음인 나는 (누구에게나 처음이겠지만) 어찌나 눈치가 보이고, 조바심이 나던지...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뭐 섭섭한 게 있나?'
혼자서 자주 되뇌었다. 그 시절엔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나도 괴로워했던 게 분명하다. 이제는 조금 살아봐서 그런지 면역력도 생기고, 혼자 맘 상하지 않고 무덤덤하게 기다려 주는 법도 배웠다. 그녀가 날 진화시켰다.
어느 날. 퇴근 후 시리얼로 식사하던 모습을 본 딸아이가 같이 먹고 싶어 했다. 와이프는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머릿속에서 뇌가 시뮬레이션을 하기 시작한다. ‘내가 평소 때 잘 먹지 않던 저녁을 챙겨 먹는 것이 맘에 들지 않나.. 낮에 육아가 너무 힘들었나.. 이미 양치하고 자기 전인 아이가 때를 쓰는 모습이 보기 싫은 건가.. ‘ 아이가 계속 때를 쓰자 시리얼에 우유를 말아 숟가락을 식탁 위에 획 던져두고 아무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속 좁은 나도 마음이 쓰라리다.
‘에휴.. 맘 편한 날이 없구먼.. ’
“ 다은아 이거 먹자. 대신 먹고 치카치카하는 거야. “
“ 응~ 알아떠. ”
“다은아 아빠 씻고 올 동안 잠깐 기다려”
“ 응~ 알아떠. ”
“다은아 아빠 설거지하고 올 동안 잠깐 기다려”
“ 응~ 알아떠. ”
곧 잘 대답하는 애가 귀엽기만 하다. 그렇게 2시간을 놀아주고 애를 재우러 들여 보냈다. 다음날 나도 기분이 썩 좋지 않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 전 그냥 안아줬다. 그녀는 풀렸다. 사실 뭐가 풀렸는지 모른다. 왜 기분 나쁜지도 모른다. 그냥 난 벚꽃이 피면 바라보고, 날려도 그냥 묵묵히 바라보는 것 일뿐.
아마 아내가 매일 살랑거리는 벚꽃이었다면 너무 익숙해져서 예쁜지도 소중한지도 몰랐을 거다. 부인을 가볍게 보고 내 의견만 주장하는 고집 센 남편이 되었을지도.. 아침 기분 다르고, 저녁 기분 다른 그녀. 봄처럼 변덕이 심한 그녀는 사랑받을 줄 아는 DNA를 가졌다. 벚꽃과 닮았다.
그러고 보면 넌 나의 꽃이다. 봄날의 벚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