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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May 06. 2020

아파트 제갈공명

메아리 하나로  갑질을 중재시키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게 어디서 그 따위야?"


아침 6시 30분. 출근을 준비하던 시간에 아파트 단지가 쩌렁쩌렁 울렸다. 고요한 아침 시간은 작은 소리도 유난히 크게 울린다. 평상시와 다른 화난 남자의 음성에 촉각이 곤두섰다. 처음엔 관심 조차 주지 않았지만, 10분이 지나도 고성이 줄어들 생각을 안 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았다. 경비 아저씨와 노인분이 재활용 처리장에서 서있었고, 노인이 삿대질을 해대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자초지종은 들어봐야 알겠지만, 노인이 연신 삿대질을 하고 있었고 경비 아저씨의 묵묵한 시선 회피가 눈에 들어왔다. 

'또 하나의 갑질인가.. ' 

"나이도 어린것이 인사를 하면 받아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너 나이가 몇 살이야? 내가 언제 화를 냈어?” 

잠시 노인의 폭언을 듣고 있어 보니, 다행히 원한과 큰 잘못에 대한 다툼은 아닌 것 같다. 사소한 이유가 노인의 감정을 상하게 했고, 스스로 화가 제어가 되지 않아 자신의 내면의 어둠을 쏟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노인은 입주민으로 ‘갑'의 위치였고, 직장으로 머물러 있는 경비 아저씨는 ‘을'이 분명했다. 입주인과 싸워서 이길 수 없는 경비 아저씨. 몇 마디 대꾸도 하셨지만 연신 묵묵히 듣고 계셨다. 시선을 피해 분리 수거장으로 이동했지만, 굳이 노인은 그의 진로를 막아서 시비를 따졌다.


잘잘못을 떠나 싸움은 말려야 한다. 망치를 든 사람은 모두 못으로 보인다. 어떤 착한 사람도 감정에 휩쓸리면 눈에 보이는 게 없다. 감정에 묻힌 순간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사소한 싸움이 큰 원한으로 발전하지 않는가. 나는 현명한 중재자는 아니었지만, 그냥 싸움을 말리고 싶었다. 베란다 창문을 열었다. 살짝 긴장감이 올라왔지만 목을 풀었다. 

“흠흠"

선뜻 뭐라고 외칠지 고민된다. 무슨 소리를 외쳐야 할까.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a안. "야이 미친 노인내야. 어디서 갑질이야. 조용히 안 하면 신고할 거야."

흥분된 분위기에 기름을 끼얹어 버릴 것 같다. 베란다 층수를 세어보고 집으로 찾아 올 지도 모르니 조금 수위를 낮춘다.


b안. "갑질 하지 마세요! 싸우지 마세요!"

분노에 휩싸인 사람의 귀에 그 사람의 행동을 부정하는 말도 자극적이다. 

"네가 뭔데 나한테 하라 마라야. 뭘 봐.” 노인에게 역공을 당할 것 같다. 나조차 욕을 듣고 상한 감정에 "야이 미친 노인내야. 어디서 갑질이야." a안.으로 돌아갈 것 같다. 정신을 가다듬는다. 


최근 <Stillness>를 읽고 평온한 마음을 갈망하는 상태였으며, <이제는 이기는 인생을 살고 싶다>를 통해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에 몰두해 있었고, <카피책>에서 결이 다른 하나의 메시지가 결과를 바꾸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따로, 또 같이 살고 있습니다>를 통해 공동주택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사연들도 이미 알고 있었다. 


프레임을 바꾸기로 한다. 노인은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다. 전전두엽의 이성이 마비된 상태다. 노인은 제쳐두자. 말이 통하지 않는 상태다. 오히려 묵묵히 시선을 회피하며 듣고 있는 경비아저씨를 이용해야 한다. 

" 경비 아저씨 힘내세요!  "

아파트가 메아리처럼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노인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계속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2 연사 발포. 그리고 마지막 3 연사 발포. 

" 경비 아저씨 힘내세요! 괜찮아요~ "  

노인의 목소리가 수그러든다. 노인은 아차 했을 거다. 잠시 꺼져있던 전전두엽이 깨어난 것 같다. 

'아차, 내가 하고 있는 것이 갑질인가? 이러다 나도 뉴스 나오는 거 아니야? ' 

문득 생각이 들었을 거다. 인간은 모두 감정의 자정 작용이 있으니 말이다. 만약 나의 선창이 계속되면 갑자기 하나 둘 모든 입주민이 머리를 내밀고 “경비 아저씨 힘내세요” 떼창을 외치면 그가 수세로 몰릴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싸움을 말리러 내려오셨던 아주머니께서 경비 아저씨를 모시고 경비실로 모신다. 다행히 싸움이 종료되는 분위기였다. 뒤에서 와이프가 지긋이 웃고 있었다. 


출근길 지하철로 향하던 중에 노인은 자신과 친한 다른 경비를 붙잡고 억울한 듯이 자신의 불만을 토로하고 계셨다. 

‘그래. 저 노인도 상대방에 무시당한 기분에 얼마나 억울했을까. ' 

노인의 갑질에 대한 잘못은 인정할 수 없지만 노인의 ‘쓸쓸함'은 공감이 됐다. 적으로 생각했는데 그도 한 명의 입주민임을 깨달았다. 마음이 갑자기 따뜻해졌다. 잘못을 한 사람에게 행동을 지적해봐야 개선될 것이 무엇이겠는가. 노인의 사연을 조용히 들어주고 화기 누그러진 후,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려 상대방에게 사과하게 만드는 것이 더 큰 지혜가 아닐까. 언젠가 노인도 자신의 잘못을 미안해하며 슬며시 경비 아저씨에게 음료를 건넬 모습을 상상해 본다. 


공동 주택이 그렇다. 공동으로 사용함에 있어 서로를 배려하고 이해함을 배워야 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하고, 아파트가 싫으면 외딴 주택에 살아야 한다. 주택의 취약점인 보안과 관리가 필요해 공동주택에 왔다면 경비 아저씨를 이해하고 존경해야 한다. 그분이 우리의 안전과 보안, 환경 관리를 도맡아 주고 있으니 말이다. "내 관리비로 너희들 월급 주는 거야." 똥 같은 소리는 재활용도 안된다. 우리 재산을 지켜주고 관리해주니 관리비를 낼 만한 가치가 있는 거다. 자신이 하기 싫은 일, 낭비하기 싫은 시간을 그들이 대신해주고 있다. 우리 가족만 생각 말고 우리 가족 외 남은 999세대를 이해하자. 


출근길 아파트 제갈공명은 그렇게 유유히 글감을 get 하고 지하철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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