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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Mar 25. 2020

내 스스로 만들어낸 코로나 19 바이러스

내 눈 바로 앞에 떨어진 불똥

뉴스가 떴다. 나와는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코로나 19 바이러스 감염자가 같은 동네에 나왔다. 급히 모바일 지도로 감염자의 주소를 검색을 해보니. 아뿔싸. 직선거리로 1km 도 아닌 전방 500m 안에 감염자의 주택이 있다.

과거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갔던 911 테러,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911 테러는 '말 그대로' 다른 대륙의 다른 나라 일이었고 성수대교, 삼풍 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서울이라는 곳에 한 번도 와보지 못한 부산 촌놈이었기에 위험들이 가까이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중국의 코로나 바이러스도 여전히 나와 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까이 내 앞에 나타날 줄이야. 실감도 잠시, 머릿속에 오늘 내가 다녀온 곳들의 동선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역학 조사로 인해 지자체 장의 SNS에 감염자의 거주지와 동선이 모두 공개되었다. 감염자의 동거인들은 우리 가족이 주로 가던 빵집과 시설들을 이용하였다. 내가 언제  바이러스에 노출되어있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 하나는 괜찮지만, 배우자와 아이의 안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코로나 19는 비말 형태로 전염이 되는 물리적인 바이러스이다. 그런데 감염자를 같은 동네에서 발견한 후 나는 0.2 마이크로미터보다 더 작은 정신적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 어디서 날 덮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왔다. 



불신

하루에도 몇 명이나 함께 타는지 모르는 출퇴근 지하철 한 량의 좁은 공간. 회사라는 밀폐된 공간 속의 사무실. 10명 남짓한 팀 인원들과 공유하는 8시간의 업무시간. 그 동료들은 점심시간 뿔뿔이 흩어져 다른 사람들과 공기와 음식물을 나누며 비말 감염에 노출되어있다. 사실 언제 어디서 코로나에 감염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나는 타인을 불신하고 있었다. 업무시간에 타인이 말을 하면 그 사람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고, 점심시간 주방에서 일하시는 어머님의 손놀림을 지켜보고 있었고, 외출 후 손을 씻지 않는 옆 동료를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내 주위 타인의 모든 행동은 슬로 모션처럼 보였고, 그들의 입에서 나온 비말 형태의 침방울이 천천히 내 눈앞에 비행하고 있는 모습을 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불신 myself

더 겁나는 것은 감염 후 무증상 현상이었다. 많은 감염자들이 며칠간 별 다른 증상이 없다가 며칠 후 고열과 호흡 기 고통을 호소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 말은, 나 또한 현재 감염자 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 스스로 의심하고 있었다. 스스로 나의 상태를 불신하고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수시로 온도를 측정하지만 냉혈한인지, 아니면 건강이 좋지 않은 저체온증인지 36.1도가 온도계  디스플레이에 표시되었다. 

 나를 병들게 한 것은 진짜 바이러스가 아니라, 불신에서 오는 고통이었다. 그야말로 내 주위는 오리무중. 하얗게 가득 낀 안갯속 어딘가 모르게 떨어져 있는 유리조각 파편을 밟지 않기 위해 혼자서 끙끙대며 걱정하고 있었다. 바이러스가 날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서서히 죽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입맛도 없고, 남과 얽히기도 싫었다. 없던 병 마저 나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듯했다.  '감기'라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가 잠실 운동장에 쌓여 있을지도 모르는 쓸데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는 이미 내 폐가 아닌 내 마음속에 들어와 날 괴롭히고 있었다. 


Keep Calm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오히려 가족과 시간이 늘었다. 다른 회사들처럼 재택근무를 시행하진 않았지만, 추가 근무나 불필요한 외출들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퇴근 후 가족과 이야기 시간이 늘었고, 주말 동안은 집에서 휴식하거나 와이프의 운전 연수만 진행하며 공동의 시간이 늘었다. 불안했던 마음이 상대와 함께 이야기하고 나누면서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기우는 내 옆 작은 동료(?)로 부터 힘을 얻어 물리치고 있었다.


집 밖에서도 동일하게 사람들은 움직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남들을 돕기 시작했다. 인간이 가진 이타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기업, 유명인들이 기부를 시작하고, 소주 제조 업체가 주정을 재빨리 용도를 변경해 시. 군에 소독제로 제공했다, 신천지 사태로 초토화된 대구로 의사들이 스스로 짐을 싸 몰려들고 있다. 결국 작은 세포들이 힘을 합쳐 바이러스를 쫒아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겨낼 수 있는 믿음과 용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힘들이 우리 속에 들어와 있는 암세포를 쫒아 내고 있다.

우리는 그렇게 스스로 면역력을 길러내고 있다. 이겨 낼 수 있다는 믿음. 겁내지 않는 일. 바닥 끝에서도 절대 놓지 않는 용기. 서로를 독려하는 일.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 나가는 일. 그 속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진화해왔다. 내가 스스로 만들었던 뇌 속의 질병을 내 옆의 가족과 다른 사람들이 치유해주고 있었다. 무서워하기보다는 믿음이 생겨 나기 시작했다. 죽을 만큼 힘들어도 끝까지 희망을 버려선 안된다. 우리는 반드시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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