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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Jul 27. 2020

디지털 네이티브

디지털이 우리에게 빼앗아 간 것들


디지털 네이티브들에게 놀란 것 하나. 휴대폰 전화 아이콘의 모양이 '수화기' 모양인지 모른다는 것. (수화기 존재를 모른다) 두 번째는 최근 알게 됐는데 조금 충격적이다. 아날로그시계의 시간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시침과 분침의 존재를 모른단다. 현상을 납득하지 못하는 내가 늙은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세대들에 의한 문물의 퇴보인가. 이러다가 참말로 2070년에 후손들이 지갑을 발견하면 '이것은 근대의 노예 증명서 보관이나 코로나 마스크 보관함으로 유추합니다' 할 판이다. 디지털 전환의 상징 'MP3'의 격동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디지털 네이티브 1세대에 걸쳐 있지만, 그래도 아날로그의 향수에 취하곤 한다. 낙서는 역시 노트에 볼펜으로 하는 것이 제 맛이고, 윷과 고스톱도 던져야 제맛이다.


기저귀를 이제야 땐 딸아이의 성장이 빨라졌다. 게다가 코로나로 어린이 집 한번 가보지 못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딸아이를 위해 직접 한글 교육을 시작하였다.

이것은 '기역' 이건 '니은' , '디귿'  

스케치북에 모양도 그려보고, 디자인 블럭으로 모양을 설명해 보지만 예상대로 무관심하다.

"아빠 쉬 마려, 아빠 배고파, 아빠 초코 까줘"

자기가 원하는 말을 쉽게 쉽게 하고, 욕구가 충족은 충분하다. 그러니 한글을 배울 의지가 있을 리가 없다.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학생 때 구구단을 외우기를 극도로 싫어했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어른들은 원리와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뭔지도 모르고, 왜 필요한지 모르는데 일단 외우라고 했다. 구구단은 그냥 나에게 "노래"였지 곱셉이나 산수의 법칙이 아니었다. '작은 꼬마 인디언' 운율에 맞추어 구구단 음악 테이프를 억지로 들으며 외웠던 기억이 났다. 딸아이에게 한글이 재미있으리가 만무했다.


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왔다. 한글을 큼직 막하게 컴퓨터 화면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ㄱ,ㄴ,ㄷ,ㄹ....' 자판을 누르면 모니터에 글자가 뜨는 것이 신기해 보였는지 딸아이는 키보드를 연신 눌러댄다. 한글 자음이나 모음을 하나씩 쳐 넣을 때마다 기계같이 설명했다. 기역, 니은, 디귿........   한글이 재미있기보다는 모양을 찾아 한글 자판을 누르고 자신이 누른 버튼에 반응하는 모니터를 신기해했다.

'인간은 디지털에 이렇게 빨리 적응하려고 진화를 시작했구나'

아날로그로 그릴고 쓸 때 보다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랐다. 불러주는 자음, 모음을 따라 하기도 한다. 엄마, 아빠 이름까지 자판에서 자음과 모음을 조합하여 적기 시작했다. 신기했다. 역시 디지털 네이티브 다웠다. 물론 과학적이고 조립형 한글의 우수함 덕분이겠지만 말이다.


한글을 빨리 습득하기 시작한 아이에 잠깐 좋았던 마음도 잠시.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올라온다. 종이 위에 그리거나 적는 것보다 이제 자판을 두드리는 게 익숙한 아이들이라서 말이다.

'아이들은 이제 연필과 지우개의 존재를 잊혀가게 될지도 모르겠구나. '

백스페이스 한 번에 사라지는 글은 깔끔 지워버릴 수 있지만, 여운이 남지 않았다. 지우개로 틀린 부분을 지워가며 지우개 똥을 남기던 흔적은 옛이야기가 됐다. 그런 의미에서 키보드의 백스페이스 모양을 지우개 아이콘으로 바꾸어야 되지 않을까. 그래야 그들에게 지우개의 존재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빠르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는 만큼 우리 곁에 있던 것들도 하나둘씩 사라져 간다.

'무조건 새로운 것 만이 다 좋은 것은 아니구나 '

우리가 지켜야 할 것들이 많고, 사라지면 슬픈 것들이 아직 주위에 많다 것을 아이가 가르쳐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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