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테크르르 Dec 14. 2020

이런 '각성제' 같은 그녀

레드불 사 먹을 필요가 없는 천운을 받았네

여름은 잊어질 만큼 멀리 떠나가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쌀쌀한 계절이 다가왔다. 

매달 한 번씩은 차갑게 변하는 그녀인데, 두 달째 잠잠하다. 차가워진 날씨 덕에 더욱 오싹한 기분이 든다. 

'한 번 뒤집어질 때도 됐는데 말이지...'

생각은 씨가 된다고 했던가..


여름이 지나간 지가 언젠데 아직도 창고방구석 한편에 청소되지 않은 선풍기가 눈에 들어온다. 

한숨이 새어 나왔다. 

'선풍기 청소는 나의 몫이구나. 그래 이 귀찮은 일을 누가 하겠어.... '


좁디좁은 나의 속은 어차피 스스로 해야 될 미래를 알면서도 한숨을 마구 내 쉰다. 

가끔은 이것저것 뚝딱뚝딱해내는 원더우먼 같은 와이프를 바라는 무의식이 아쉬움을 토로한다. 

역시 이기적이다. 그래. 난 간사하고 개인적이다. 


속으로 강인한 여성상이 그녀에게 각인되었음 한다. 

적어도 내가 없어도. 그러니까 죽고 나서도 (그럼에도 죽고 싶지는 않다 )  

와이프 스스로 알아서 뚝딱뚝딱 못도 박고, 벌레도 잡고, 하수구도 뚫고, 화장실 청소도 하는 그런 집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노파심을 부린다. 


무의식의 심연을 헤엄치며, 

화장실 청소와 분해된 선풍기를 씻으며 한숨을 깊게 내뱉는 순간.

그녀가 밖에서 한마디 던졌다. 


“하기 싫은 거 억지로 하지 마, 그렇게 할 거면 하지 마라고! ”

.

.

.

'그렇다고 네가 할 것도 아니면서 화낼 건 뭐람..... '

속으로 중얼거린다. 


그 후 몇 일째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 

출근할 때마다 안아주고 최대한 예쁘게 이야기 하지만 그녀는 무표정으로 배웅한다. 

마음의 수가 비틀린 건지. 아니면 뭐가 맘에 들지 않는 것인지. 

평균 한 달에 한 번씩은 오던 '차가운 그분'이 오랜만에 그녀의 마음속으로 출근을 하신 모양이다. 


인간은 참 간사하기도 하지. 나도 간사한 사람 중에 한 명이기도 하다.

부처가 아니기에 '나태함'은 항상 나를 찾아온다. 

최근 몇 주간 와이프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친절한 반응에 나 또한 내 맘대로 일을 진행하거나 내 의지대로 할 때가 많다. 반대로 와이프에게 그분(?)이  찾아온 날은 정신이 바짝 긴장되고 스스로 먼저 움직일 때가 많다. 

말 한마디, 동작 하나까지 그녀 마음에 돋은 혓바늘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 조심한다. 


뭐랄까... 음..

살아있는 각성제? 

와이프는 일 년에 기본적으로 10번쯤 수가 틀리니, 

매달 그녀에게 강력한 각성제 한 방을 맞는 느낌이다. 

'인간 레드불' 정도 될까? 

커피 10잔을 마셔도 잠이 잘도 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나에게 

그녀는 '레알 찐' 카페인 같은 존재다. 


내가 '청어'라면, 그녀는 '메기'다. 

내가 '말'이라면 그녀는 '말파리'다. 


수조에서 쉽게 죽어버리는 청어를 살게 하는 것은 편안한 바다가 아니라 천적 메기를 풀어서 만든 긴장감이 청어들을 더 생기 돋게 만든다. 

아무리 게으른 말이라도 말파리에게 물리면 정신을 차리고 전력을 다해 달리게 한다. 

긴장과 스트레스는 나에게 강한 각성제다.

나를 항상 지치지 않게 달리게 만드는 그녀는 나의 촉진제다. 

'맙소사. 이런 사랑스러운 각성제가 있다니.. '


난 게으른 청어이자, 말이요. 

넌 나의 사랑스러운 천적이자 각성제다. 

그러니 이번 생에 만나지 않았겠느뇨. 


각성제인 그녀 스스로도 안다. 

"나 성격 더러운 거 나도 알아"


안다는 것. 스스로 깨닫는 것. 

그래. 그녀도 한 발짝 성장한 게 아닐까? 

테스 형도 말했으니.


그노티세아우톤. 


작가의 이전글 돈 줍기의 달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