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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테크르르 Mar 28. 2020

아직도 독서를 여가쯤으로 생각하고 있는가

독서의 고질병

초등학교 2학년.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교통사고 후유증을 우려하시던 어머니는 몇 년간 정성스레 약탕기에 한약을 달여 주셨다. 꽤 오랫동안 한약을 먹었던 것 같다. 어머니는 푸세식 화장실이 딸린 작은 마당 바닥에서 약탕기로 늘 한약을 달여주셨다. 어머니의 정성이 갸륵해서 일까. 나는 교통사고 후유증도 없었고, 한약 덕분인지 성장하며 큰 병을 앓은 적이 없다. 최근 독서의 태도에 관한 글을 읽다가, 문득 어머니의 한약이 떠올랐다. 성호 이익 선생님의 글이다. "사랑하는 어머님과 오랫동안 이별했다가 다시 만난 것처럼 독서하고, 아픈 자식의 치료법을 묻는 사람처럼 질문하고 토론하라." 부끄러웠다. 자식에게 먹일 한약을 달이던 애절함과 간절함이 나에게 있었나? 독서를 하나의 여가쯤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나.


사실 독서뿐만이 아닌 것 같다. 인생에 정성을 쏟은 적이 없다.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인생의 변곡점을 만들 만큼 스스로 한계를 넘어 본 적이 없다. 갈증이 해소되면 거기서 그만두었다. “이만하면 잘했어.” 굳이 넓은 바다를 찾아 떠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독서도 마찬가지다. 독서에 흥미를 붙이고 매달 7-8권가량의 책을 읽고 있다. 새벽, 출퇴근 시간, 점심시간, 밤 시간을 쪼개어 독서한다. 읽을수록 늘어 나는 속도와 권수는 스스로에게 대견함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책을 읽고 내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가? 독서의 태도와 사유의 힘은 마치 대량으로 끓여낸 편의점 쌍화탕 같다. 포장만 잘했지 정성도, 깊은 맛도 없다.


혹시. 새로운 책 읽기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나? 눈 앞에 놓인 수많은 추천 도서들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책을 읽고 있으면서도 다음 어떤 새로운 책을 읽을까 고민하고 있다. 읽고 있는 책에 존경과 예의가 없는 사람이다. 재독은 왜 이리도 힘들고 귀찮은가. 계속해서 새로운 책, 다음 책을 고집하는 내가 부끄럽다.  


혹시. 책장에 늘어가는 책 수에 집착하고 있지 않나? 하나둘씩 늘어 가는 책들은 스스로에게 보람을 선물 하지만, 부작용도 있다. 빨리, 많이 읽고 싶은 욕심에 속독법에 관한 책들도 다수 읽었다. 독서의 정수를 찾기보단 독서의 방법론에 집착하지 않았나 하고 반성한다.  


혹시, 맛있는 것만 읽는 편식의 독서를 하지 않나? 관심 없거나, 어려운 글은 뇌의 산소를 급격히 고갈시켜 나를 백일몽 상태로 만든다. 독서의 태도와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치열하게 적은 저자에게 고개 숙여 사과해야 할 것 같다.


나의 독서 생활에는 문제가 많다. 다행히 긍정적인 부분은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 아직 확실한 탈출법을 찾지 못했지만 말이다. 하루는 주말 시간을 쪼개어 거실 소파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지금 여유롭게 책이 읽혀? “  와이프가 구박했다. 나는 흡사 궁예처럼 “감히 누가 독서를 여유롭게 보는가?” 하고 반기를 들었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가 뱉은 말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스스로 치열하고 정성 들여 독서를 해야 할 이유가 생겼으니 말이다. 치열한 독서가가 되고 싶다.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기에 앞으로도 개선의 가능성이 있다고 믿는다. 독서를 통해 내 삶의 변곡점을 만들어 내리라 믿는다. 자신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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