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이 물었습니다.
강동구와 광진구 사이. 광진교. 중간 어디쯤.
당시에는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처음으로 서울에 홀로 올라와 머물렀던 곳이 강동구 였습니다.
'강동구'가 어디야?
부산 촌놈도 어디 붙어 있는지 모르는 강동구였습니다.
제가 무시한 강동구 만큼이나, 서울 생활도 저를 무시했습니다. 처음 입사한 회사의 선임들은 '부산 촌놈'이라고 괄시하고 무시했었죠. 그럴때 마다 위로 받던 곳이 바로 광진교 위 저녁 어스름이 지던 그 장소 입니다.
광진교에서 바라보는 한강에서의 노을은 매우 붉습니다. 매일 보는 하늘과 노을이지만, 이만큼 붉은 노을을 본적이 없습니다. 같은 풍경도 서있는 장소에 따라 달라 보인다고 하던데 이 곳에서는 제 눈에 붉은색 필터를 깔아주는 뭔가가 있나 봅니다. 이 곳에서는 도시 전체가 붉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려고 주위를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 또한 충혈된 제 눈과 눈물을 남들이 볼까봐 신경쓰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왜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투우 경기에서는 싸움 중에 소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순간이 온다고합니다. 경기장 안에 확실히 정해진 공간이 아니라 투우 경기 중에 소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피난처로 삼은 순간이나 장소가 있습니다. 이 곳을 '퀘렌시아'라고 부릅나다. 투우사는 퀘렌시아 안에 있는 소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투우장의 소가 퀘렌시아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것처럼, 우리들도 남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심신을 재충전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합니다. 저에게는 아마 퀘렌시아는 광진교 중간 어디쯤. 붉은 노을을 바라보는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이듭니다. 위로 받고,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고 의기투합할 수 있는 그런 장소 말이죠.
장소 자체가 사람에게 주는 힘도 있지만, 장소는 본인이 정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당시 광진교 위에서 느꼈던 감정은 아마 감수성이 뛰어난 나이였기 때문에 더 큰 의미로 다가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장소에서도 느끼는 바가 모두 다른것 처럼, 모든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퀘렌시아가 다릅니다. 요즘 저의 퀘렌시아는 글을 쓰는 백지 위 입니다.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지친 마음을 재충전 할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붉은 노을을 바라보던 광진교 위가 되기도 하고, 한강 바람이 불어오는 시원한 광진교 아래 그늘이 되기도 합니다. 그저 안식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다음 삶을 준비하고 다짐하는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공간입니다. 가끔은 이 백지위에서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계속해서 이 '백지'라는 저만의 퀘렌시아 공간에 매일 방문해야겠습니다.
당신의 퀘렌시아는 어디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