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좀 자자. 플리즈.
알고리즘이 물었습니다.
어릴적 잠이 많았습니다. 밤 9시가 넘으면 귀신이 나오는줄 알던저는 매번 9시를 넘기지 못하고 잠을 잤습니다. 일찍 잠을 자던 습관은 항상 학교 숙제를 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서 하곤 했습니다. 새벽에는 집중과 촉박함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기에 더 능률이 오르는 것을 어렸을적 부터 느꼈죠. 실제로는 밤에 과제를 다못해서 일찍 일어 난 것 뿐인데 말입니다.
성인이 되어선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만한 이유는 '시간'을 확보해야했기 때문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업무를 진행할때도 있었고, 자기계발에 시간을 투자한적이 많습니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긴이후부터는 시간 확보 전쟁이 더욱 치열해집니다. 출퇴근, 근무, 귀가, 가정일을 하고 나면 제 시간은 그야말로 1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새벽 기상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었습니다. 새벽은 저를 깨우고 시작하게 하는 원천과 같습니다.
반면, 저의 새벽을 방해하는 자가 있으니, 바로 저희 아이입니다. 그녀도 또래 아이들보다 선천적으로 잠이 많습니다. 저녁 7시30분이되면 잠자리에 듭니다. 덕분에 집으로 귀가 하면 일주일에 대부분은 얼굴을 못봅니다. 그래서 결국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은 새벽뿐이기도 합니다.
제가 새벽준비를 하고 예열하고 있으면 그녀가 항상 제방으로 찾아옵니다. 반가운 불청객입니다. 아이를 봐서 즐겁다가도 새벽에 집중해서 해야할 일이 있을때는 아쉽기도 합니다. 제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세상 귀여운 '장애물'이라고 해야할것 같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녀는 일어나 제 방을 찾아왔습니다. 저는 글을 쓰고 그녀에게는 준비된 동시 한편을 쥐어줬습니다.
"아빠가 작가님들이랑,
이거 글만 빨리쓰고 나갈게,
동시 같이 읽자. 조금만 기다려"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합니다. 새벽에 혼자 책상앞에 앉아있을 아이를 생각하니 타자가 빨라지기 시작합니다. 내면에 있는 제 생각을 다 끄집어 내기도 전에 '제 마음은 빨리 끝내고 아이한테 가'라고 재촉합니다. 사랑스러운 저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장애물임이 틀림이 없습니다.
가끔 야속하기도 하지요.
'나에게도 나만의 시간이 필요해.'
맞아요. 아빠도 한명의 사람으로써 뭔가 휴식을 취하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반대로
'하루에 아이를 몇 시간이나 봐?'
라고 물으니 또 미안하기도 합니다. 세상만사 뭐가 그리 중요하다고 아이를 때어놓고 이렇게 글을 적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루에 볼 수 있는 시간이 지금 뿐인데 말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가족과 실제로 가족의 소중함을 아는 것은 틀립니다. 최근 해결되지 않는 작은 어려움을 저희 가족은 겪었습니다. 결국 제가 얻는 해답은 '가족'이었습니다. 힘들때 저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아내와, 아이였습니다. 언제 달려가도 그들은 그자리에 있더군요. 지금도 아마 거실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 어서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