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고 피곤한 날

2023. 6. 3.

토요일 아침이다. 어제는 금요일. 대학원 수업에 출석하는 남편을 대신해 버스를 타고 아이들 학교에 가서 버스로 다시 집에 온다. 오전에는 시장에 가서 일주일치 전투 식량 재료들을 사 왔고 부탁할 일이 있어 칠레 교민을 만났다. 이동을 많이 하고 사람을 만난 날은 피곤하다. 어제는 석회가 많은 수돗물 때문에 생긴 식기 건조대의 녹슨 부분이 유난히 더 크게 보였다. 하교한 아이들을 집에 들여보내고 저녁 준비 시간까지 1시간 정도 남아 집 근처 쇼핑몰 세 곳을 전부 뒤져서 플라스틱 식기 건조대를 찾았다.


오후에 남편이 배탈이 나서 죽을 따로 끓였다. 저녁 시간도 분주하게 보내고 나니 몸이 피곤해지면서 짜증이 났다.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잤으면 했던 아이들이 사소한 문제로 다퉜고 나는 결국 화를 냈다. 화를 다 삭이지 못한 채로 잠이 들었더니 새벽에 잠에서 깨버렸다.


이 집은 하루만 청소기를 돌리지 않아도 먼지가 눈에 보인다. 오후까지 청소를 하지 못한 찝찝한 마음과 피곤해서 청소에 대한 의지를 상실한 나는 계속 화가 나 있었다.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 사이 얼른 청소를 마치고 낮잠을 잤다.


자고 나면 몸도 마음도 달라져있다. 그래서 아침이 필요한 게 아닐까. 아침이면 달라질 기분을 기대하며 잠에 드는 것이 아닐까.


피곤함이 느껴질 때마다 마음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직장도 안 다니면서 뭐가 피곤해.'

'돈도 안 버는데 힘들 게 뭐가 있어.'


모두 마음속에서 내가 하는 말이다. 내가 나를 우습게 여기는 것 같다.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돈을 벌지 않으면, 성과를 내지 않으면 나는 나를 하찮게 여기고 있었다.


경제권은 있지만 경제력이 없는 삶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항상 나를 멸시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이들이 어려서 육아휴직을 했을 때와는 다르다.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경제력은 없었지만 오히려 당당했다. 어린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나는 고생하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했다.


지금은 아이들도 어느 정도 컸고 남편이 아이들을 같이 돌보고 있고 내 역할이 절대적이지 않다. 어떤 날은 '내가 없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이 모든 게 피곤해서다. 피곤하면 마음이 나빠진다. 나쁜 생각, 나쁜 말이 순서 없이 튀어나온다. 나이가 들어서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인정하자. 내가 체력이 좋은 편이지만 이제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자. 피곤하면 좀 쉬어도 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돈을 벌지 않아도 나는 의미 있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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