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어도 잘 싸운 경기
"좋은 경기란 이긴 경기를 말하는 게 아니야, 졌어도 잘 싸운 경기를 말하는 것이고, 누가 이겼든 결과보다 과정이 아름다웠던 경기를 말하는 거지." 친구의 그 말을 들을 때 나는 우리가 사는 삶도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좋은 경기, 좋은 삶.
<드라마 속 대사 한마디가 가슴을 후벼 팔 때가 있다> 정덕현 씀
오늘 도교육청에서 주최하는 바둑대회가 있었다. 작년에는 바둑대회가 개최되긴 했으나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으로 치러졌다. 두 아들은 처음으로 대면으로 바둑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남편이 근무라서 나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대회장으로 갔다. 대회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들은 긴장이 된다,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했다.
"져도 괜찮아."
"떨리는 게 당연해."
마치 오은영 박사가 된 듯 나는 아이들을 격려하느라 애를 썼다.
속으로는 '중요한 시험도 아닌데 떨어져도 상관없어!'라고 생각하며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다.
두 아들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다.
큰 아이는 1승 1패로, 상대적으로 기대가 적었던 둘째는 3승 1패로 탈락했다.
둘째는 3승을 해서 만족스러웠는지 크게 실망하지 않았다.
큰 아들은 크게 실망했다. 경기가 끝나도 나오지 않고 다른 아이들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괜찮냐고 물어보니 그제야 서럽게 울었다.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울었다.
아이들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편의점에서 라면과 삼각김밥 그리고 핫바까지 원하는 것을 먹게 해 주었다. TV 시청도 기꺼이 허락했다. 아이들은 금방 잊어버린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우리 아이들이 예선은 가볍게 통과할 거라 생각하고 점심 식사 장소까지 알아봤다. 대회장 주변의 맛집을 검색하며 시간에 맞게 먹을 수 있는지까지 고민했다. 우리 아이들은 뭐든 잘할 거라 기대했다.
막상 아이들의 실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남편도 속상해했다.
이럴 땐 상황을 얼른 받아들이기는 것이 현명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부모는 자식에게 했던 기대가 허물어지는 것을 경험하나 봐."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자식에게 했던 기대를 알아차리고 그 기대가 무너지는 것을 경험하며 자신의 아이가 그리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수용하는 것 같다.
아이들은 저녁에도 바둑 이야기를 계속했다. 큰 아이는 아깝게 졌다고 했고 둘째는 대단한 상대를 이겼다고 했다. 오늘 경기를 다 잊어버리진 않은 것 같다. 대회 전 날, 아이들이 컨디션 관리를 위해 일찍 자겠다고 하고 오늘 새벽에 일어나서 바둑책을 보며 열심히 준비했던 것이 떠올랐다. 나는 아이들이 무언가에 몰입하고 열심히 하는 모습에 만족한다. 먼 곳까지 운전하고 가서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고 힘들었지만 커가면서 언젠가 시들어버릴지 모르는 열정을 내게 보여준 아이들이 대견하고 고마웠다.
그리고 따뜻하게 격려받으면서 지는 경험을 한 아이들이 다음에 또 지더라도 다시 자신을 일으켜 세울 힘을 키우기를 바란다. 오늘도 참 유익한 하루였다.(쓰면 안되는 상투적인 표현인 줄 알면서도 꼭 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