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고도 슬픈 일

2023. 7. 20.

젊은 교사가 학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를 봤다. 카카오톡 연락처에 있는 프로필 사진에 검은 리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무섭다. 남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이 무거워진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기 겁난다.


수업 중 학생이 교사에게 욕설을 하고 학부모가 교사에게 민원을 제기하는 일은 이제 흔하다. 나도 여러 번 겪었고 일이 커지는 게 두려워 덮어두었다.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 교사와 관련 업무 처리 교사 간의 갈등, 교사와 교장, 교감 선생님과의 갈등, 교사와 학부모와의 갈등을 대면하는 일은 나에게 버거웠다. 지금도 조용히 처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아직도 무섭다.


나는 병가를 냈다. 학교폭력 업무를 담당하는 학생부장이었다.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어떤 피해 학생이 자신의 부모에게 내가 피해 사실 전부를 말했다며 복도에서 나에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까지 따라와 욕을 하며 버텼다. 학생부장으로서 피해 사실 전부를 말할 의무가 있다는 나의 설명에도 학생은 욕설과 비아냥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 학생과 비슷한 인상착의를 한 사람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난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받은 약으로는 소용이 없었다.


7, 8년 전부터 학교에서 '아동학대'라는 단어가 교사들을 압박했다. 합법적인 지도조차도 정서학대로 분류되어 신고를 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교직원 회의시간에 수차례 들었다. 내가 나를 보호하지 않으면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과 마음에 새기며 학교에 출근했다. 수업 시간에 자고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울 수 없었다. 신체 접촉을 하면 성추행으로 신고당할 수 있다. 자는 학생을 깨우다 옥신각신하는 사이에 다른 학생의 수업권이 침해된다.


그 교사는 왜 학교에서 죽었을까. 나는 병가를 내기 직전 자주 학교 옥상을 떠올렸다. 당시 근무하던 학교는 6층 건물이었다. 가보지도 못한 옥상을 떠올리며 '이만 하면 떨어져도 될까?'를 매 시간마다 고민했다. 왜 학교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된다. 이번처럼 일이 크게 터지고 나면 학교는, 사회는 달라질까. 스승의 날 즈음에만 쏟아지는 교권 추락 기사가 생각난다.


학생을 만나고 가르치며 같이 성장하는 일이 좋아 교사가 되었다. 이제 학생을 만나는 일이 두려워진 나는 가르치는 일이 나에게 정말 맞는 일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맞지 않아도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어떻게든 버텨내야 하는 현실이 슬프고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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