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간

2023. 8. 12.

오늘 두 시간의 자유시간이 생겼다. 아이들이 친구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았기 때문이다. 큰아이의 같은 반 친구의 생일인데 친구 엄마에게 둘째 아이까지 파티에 와도 좋다는 메시지를 받았다. 주말에 아이들 없이 남편과 나, 단둘이 보내는 시간이 얼마만인가. 잠시 흥분했다. 한국에 있었다면 남편과 골프 연습을 하러 가거나 데이트를 했을 텐데. 칠레에서는 이런 시간이 와도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오전에 시장에 다녀온 나와 남편은 피곤해서 낮잠을 잤다.


생일 파티를 했던 친구의 엄마는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선생님이다. 둘째 아이의 수업도 담당한다. 둘째 아이를 잘 알고 있어서 큰아이와 같이 초대했을 테지만 그 세심한 배려가 고맙다. 생일 파티에 가지 못한 아이의 서운한 마음을, 혼자 놀아야 하는 시간의 심심함을 이해했는지 모른다. 두 아이가 모두 없을 때 편하게 보낼 수 있는 부모의 시간까지 헤아렸는지도 모르겠다.


칠레에 와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의 친절함과 세심함에 자주 눈길이 간다. 내가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을까. 남편 친구의 아내는 만날 때마다 쇼핑백에 커피콩, 아이들 과자, 직접 구운 빵 등을 챙겨 와 나에게 건넨다. 미국 여행에서 묵었던 호텔의 직원은 생수를 요청하는 나에게 아낌없이 주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담아줄 수 있는지 부탁했을 때는 안내 데스크와 조금 떨어져 있는 곳까지 가서 뜨거운 물을 부어주었다. 그는 컵라면 용기가 뜨겁다며 다른 종이컵을 한 번 더 겹쳐서 나에게 건넸다.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남의 어려운 처지와 상황을 미리 헤아리고 적절한 도움을 주는 또는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 그 마음이 어찌 진심이 아닐 수 있을까. 내가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처럼 상대도 나를 그렇게 대하면 좋겠다. 그래서 내가 관계에 까탈을 부리는 걸까. 진심이 아닌 사람을 만나면 화가 나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정함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그럼 다정하지 않은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바꿀 수밖에. 나에게는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지금까지는 '앞으로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속에서 그 사람들을 배제했다.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나에게서 배제되어 멀어지고 때로는 나를 미워하기도 했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태도를 갖추지 않은 사람을 내 마음에서 배제시키지 않고 적정한 거리에서 잘 지내는 방법은 없을까. 이것이 관계에서 내가 풀어야 할 숙제다. 사람을 대할 때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 말고 건조하고 덤덤한 감정도 느껴 보는 것. 그건 그 사람을 조금이나마 이해해야 가능할 것 같다. 그 어려운 일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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