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아온 지진

2023. 8. 16.

소파에 앉아 있는 내 몸이 약하게 흔들린다. 몇 초간 흔들흔들하더니 휴대폰에서 지진이 왔다는 알림이 왔다.

'이번에는 규모가 얼마나 되려나?'

궁금한 마음으로 휴대폰을 확인한다. 집에서 20km 떨어진 곳에서 지진이 발생했다. 규모는 5.0. 나 여기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 두렵다. 밤에 찾아오는 지진은 더 무섭다. 아이들이 자고 있어서 다행이다. 작년 이 날에도 지진이 났었는데. 당시 나는 칠레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호텔에 있었다. 이런저런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었는데 갑자기 큰 흔들림을 느꼈다.

'여기가 칠레구나!'

지진으로 유명한 나라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이렇게 칠레 거주 1주년을 기념했다.


아침에 아이들을 보내고 청소를 하고 남편과 은행에 다녀온 후 책을 보고 있는데 졸음이 왔다. 자려고 누웠다.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이들이 없는 조용한 집에서 누워있으니 묘한 편안함과 나른함이 느껴졌다. 달게 잘 잤다. 낮잠도 아닌 오전잠. 나는 아침 먹고 난 후가 제일 나른하다. 오후의 나른함 보다 더. 학교에서 근무할 때 1교시 수업이 제일 힘들었다. 아이들은 졸리고 나는 나른했다. 누가 누구에게 피곤함을 전염시키는지 모를 만큼 고등학교 1교시 수업은 적막하고 막막하다.


요즘 끼니때마다 뭘 먹을지 결정하지 못하는 나를 본다. 남편과 아이들은 번갈아 가며 끼니때마다 나에게 묻는다.

"아침은 뭐 먹어?"

"점심 메뉴는 뭐예요?"

"도시락 반찬은 정했어?"


매번 하던 음식만 하면서도 쉽게 메뉴를 정하지 못한다. 머릿속에서는 음식이 둥둥 떠다닌다. 결정이 어렵다. 문득 '나는 왜 결정이 어렵지?' 하고 본격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알았다. 나는 실패가 두렵다. 저녁 메뉴로 김치찌개를 떠올린다. 냄새로 인해 이웃들로부터 항의가 들어올까 걱정되고 한국에서보다 맛있게 할 자신이 없다. 김밥은? 지금 하기에는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떡볶이는? 떡을 미리 해동시키지 않았다.

핑계만 계속 쌓인다.


편하게 결정하고 요리를 시작하면 되는데. 요리를 해놓으면 어떻게든 먹을 건데. 복잡한 과정이 머릿속에서 나를 지치게 한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힘들고. 음식을 망치고 나서 꽤 오랜 시간 기분이 상했던 적도 있었다. 그럼 그 메뉴는 한동안 다시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있구나. 아무도 나의 실패에 대해 말하는 사람이 없는데. 나는 아직도 실패에 익숙해지지 않았구나. 그래서 아이가 흘린 물 한 방울도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구나. 실수든 실패든 나는 그것에 관대하지 않구나.


나는 '그냥 하기'가 제일 어렵다.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이 힘들다. 늘 비장한 각오로 힘주어 살았서 그런 것 같다. 힘주지 않고 힘 있게 살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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