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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Sep 10. 2023

나는 이제 초보 여행자가 아니니까

여행의 본전

3일 후에 페루로 떠난다. 설레고 긴장된다. 페루 여행은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기대했다. 마추픽추가 있는 페루가 아닌가. 한 번 엎어진 여행 계획을 다시 세우는 일은 익숙하기도 하면서 또 못 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추가로 감당하는 일이었다.


한국에서도 칠레에 와서도 여행 계획은 주로 내가 짠다. 남편과는 여행에 대한 큰 틀만 상의한다. 어디로 갈 것인지, 기간은 얼마나 잡을 것인지. 주로 "여행 가자!"는 말은 남편이 하고 나는 "그럴까?"하고 대답한다. 남편은 대학원 과제 제출로 바쁘고 아이들의 등하교를 담당하기 때문에 내가 시간이 더 여유롭다. 여행 계획을 내가 세우는 것에 대해서 큰 불만은 없다. 여행지에 가면 남편이 언어적 소통에 대해서는 책임진다. 나는 스페인어를 못하니까. 


여행 경험이 쌓일수록 나는 점점 용기가 생겼다. 여행지에서 체력이 약한 남편을 쉬게 하기 위해 못하는 스페인어로 더듬더듬 호텔 직원에게 무언가를 묻거나 부탁하기도 한다. 나는 그들의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듣는 눈치는 늘어서 대충 알아먹는다. 칠레에 와서 눈치가 더 빨라졌다. 칠레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을 갈 때는 남편이 계획을 했다. 나는 스페인어 완전 초보였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이 호텔을 예약했는데 호텔 예약 플랫폼에서 가장 먼저 추천하는 숙소로 예약을 한 것이다. 막상 그 호텔에 가보고 생각보다 열악한 시설에 깜짝 놀랐다. 두 번의 실수(?)를 겪고 나서는 이제 내가 호텔 예약부터 여행 일정 관리 및 투어사 예약까지 여행의 모든 과정을 담당한다. 돈이 많이 드는 항공권 예약은 정확함이 필요하기 때문에 남편이 거의 하지만 아르헨티나 항공사의 항공권 예약만큼은 내가 한다. 아르헨티나 항공권에 대해서 내가 공부를 따로 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처음에는 현지 여행사에 모든 것을 맡기려고 했다. 여행 정보를 계속 찾아보니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버스를 예약하고 현지에서 택시를 타고 호텔로 들어가고 투어사를 알아봐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블로그에 있는 수많은 정보들이 나는 안심시켰다. 거의 비슷한 방법으로 버스를 탔고 택시를 탔고 투어를 신청했다. 그들이 했던 방법으로 하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남편도 있으니까. 비용을 계산해 보니 투어사에 맡기는 것보다 절반은 싼 가격으로 여행이 가능해졌다. 이럴 수가. 그동안 나는 호구였던 건가. 좀 더 저렴하게 할 수 있었던 지난 여행에 대해 아쉬움이 생겼다. 그렇지만 몇 번 그렇게 호구가 되어줘야 초보 여행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에 대해서 이렇게 관대해지다니. 놀랍다.


앞에서 남편의 호텔 예약에 대해 험담을 했지만 나도 한국에서 비슷한 실수를 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에 갔는데 싼 가격의 호텔을 예약하다 보니 위치가 너무 안 좋았다. 지하철역에서 멀고 주요 관광지들과는 거리가 있어서 남편이 길을 찾느라 꽤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서투르고 실수하는 과정을 겪어야 완전 초보에서 벗어나나 보다. 


여행 횟수가 늘어나면서 호텔 예약 건수가 많아지자 호텔 예약 플랫폼의 회원 등급이 올라갔다. 더 저렴하게 더 좋은 조건으로 호텔을 예약할 수 있게 되었다. 내 조건에 맞는 호텔을 예약하는 요령도 생겼다. 보통 호텔 예약 플랫폼에는 4인 가족을 위한 객실이 많이 없다. 4인 가족이 하나의 객실을 써야 여러모로 편한데 싱글 침대 두 개가 있는 객실을 두 개 예약하게 되어있다. 객실을 두 개 예약하면 호텔비도 올라간다. 나는 호텔을 예약하기 전에 후기도 꼼꼼하게 살핀다. 예약 사이트의 후기는 물론이고 구글 지도에서 평점을 확인한다. 구글 지도에서 호텔을 검색하면 그 호텔의 정보도 같이 제공한다. 호텔의 웹사이트를 찾아서 접속하면 그 호텔에서 보유하고 있는 모든 객실의 형태를 알 수 있다. 호텔에 4인 가족이 하나의 객실에 묵을 수 있는 객실이 있으면 호텔에 직접 예약한다. 두 개의 객실을 예약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남미의 많은 국가의 호텔이나 투어사는 whatsapp 번호로 소통할 수 있게 되어 있어 편하다. 점점 요령이 생기고 자신감이 생겼다. 


자신감이 늘어날수록 직접 하는 일이 많아지고 비용은 절약된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나에게 용기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무섭다고 남편에게 맡기지 않고 모른다고 투어사에 돈을 들이지 않고 귀찮다고 하지 않았던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본전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내가 갖게 된 노하우, 자신감과 용기도 있었다. 미리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고 현지에서 결정하는 여유까지 말이다. 


그렇다고 여행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진 않는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앞두고 잘 때 꿈을 꾸고 불안과 걱정으로 뒤척인다. 하지만 여행에 대해 준비를 하면 할수록 이전보다 나를 더 믿게 되었다. 여행 준비에서 배제되어 있던 남편의 존재도 새삼 깨달았다. 나도 있고 남편도 있으니 여행지에서 어떤 일이 생겨도 잘 헤쳐갈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이제 초보 여행자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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