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주말

2023. 10. 1.

벌써 10월이다. 칠레는 봄이다. 정말 봄이다. 어제는 여름처럼 더웠다. 빨래가 아주 바짝바짝 말랐다. 나는 빨래가 햇빛에 바짝 말라 거칠거칠한 그 느낌이 좋다. 토요일에는 원래 시장에 가는데 지난 화요일에 미리 다녀왔다. 어제는 밖에 나가지 않았다. 끼니도 냉장고에 있는 반찬과 국으로 해결했다.


주말이 바쁘지 않아 좋다. 주말에 바빠야 평일에 편했는데. 주말에 온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만 할 수 있어서 좋다. 오늘은 점심 식사 초대를 받아 지인의 집에 가기로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으면 좋겠다. 적당한 예의와 친절을 갖춘 사회적 옷을 입고 적당히 말하고 들으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


오늘 아침에는 수다를 떨면서 밥을 느리게 먹는 아이들을 보며 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결혼 초반에 나는 시댁에 몹시 자주 갔다. 나의 세 명의 시누이 중 시댁 근처에 사는 두 명의 시누이는 나보다 더 몹시 시댁에 자주 왔다. 내가 시댁에 가 있으면 하루 내내 시누이들이 오고 하루 내내 시누이들이 갔다. 시누이들은 절대로 혼자 오지 않았다. 자신의 남편과 아이들까지 데리고 왔다. 나는 끼니때가 제일 힘들었다. 시누이들은 자신의 친정에 오면 꼭 밥을 먹고 갔다. 아니 끼니를 해결하러 친정에 오는 것 같았다. 시누이들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우리 부부와 시부모님의 식사만 챙기면 된다. 시누이들의 식구까지 보태지면 챙겨야 할 그릇, 수저, 젓가락도 늘어난다. 설거지는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음식 준비는 시어머니가 하셨지만 나는 시어머니가 요리하시는 내내 옆에서 지키며 도와드려야 했다.


나에게는 조카인 시누이의 아이들은 밥을 먹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조카들이 밥을 천천히 먹기도 했지만 시누이들은 아이들을 잘 먹여야 한다며 밥을 많이 먹게 했다. 나는 조카들이 밥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설거지를 하는데 기다리는 내내 화가 났다. 나를 배려해서 아이들에게 밥을 얼른 먹으라고 채근하면 좋겠는데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남편에게 이런 불만을 이야기하면 남편은 대체로 잘 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를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나도 그렇게 넘어갔다. 남편의 "가족이잖아!" 라는 말이 무슨 대단한 규범인 줄 알았다. 그때는 시댁에 자주 가야, 산더미 같은 설거지를 군말 없이 해야 좋은 며느리, 좋은 아내가 될 거라 착각했다.


아침에 그 일이 생각난 나는 갑자기 남편을 책망했다.

"자기는 그때 뭐 했어? 누나들한테 아이들이 먹은 그릇은 누나들이 직접 하라고 말할 수 있었잖아."

"미안해. 그때는 나도 몰랐어. 자기랑 살면서 그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거지."

남편의 말에 화가 누그러지긴 했지만 순간순간 예전 기억이 떠올라 화가 날 때가 많다.


나에게도 '며느라기'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왜 참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까 후회가 된다. 요즘 시댁에 가면 나는 당당하고 편하게 하고 싶은 말은 한다. 밥을 차려 놓고 지각쟁이 시누이들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는 시어머니의 말에 "어머니, 먼저 온 사람부터 먹으면 어떨까요?" 하고 말한다. 그래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나를 더 배려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시댁에서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로 본다는 말은 절대 불변의 진리다.


칠레에 오니 가끔 즐겁고 자주 불편한 며느리의 역할을 벗어던질 수 있어서 좋다. 부지런한 시어머니 덕분에 명절 스트레스는 거의 없지만 그렇다고 시댁이 마냥 편하지는 않다. 내가 듣기 불편한 말을 자주 해대는 시댁 식구는 있게 마련이고 나는 그들과 관계가 나빠지지 않는 선에게 적당히 대꾸할 말을 고르고 다듬어야 한다.


남편과는 이제 예전 일을 웃으며 편하게 이야기한다. 나도 몰랐고 그도 몰라서 그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온전히 남편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도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야 했다. 솔직함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옳은 방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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