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0. 20.
일기를 꼬박꼬박 쓰기로 다짐했었다. 하루에 한 번 쓰는 일기가 가끔은 쓰기 싫어서 결국 자기 전까지 쓰지 못할 때가 있다. 한 번 안 쓰면 계속 쓰기 싫다. 며칠 동안 그런 마음이 들어서 내가 왜 그런지 생각했다.
몸부터 점검했다. 피곤할 때 나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 꼭 해야 할 일만 하고 침대로 도망친다. 마음을 점검했다. 화가 나 있을 때, 속상할 때 등등 여러 이유로 나는 글쓰기가 싫어진다. 최근에 내가 확인한 가장 큰 이유는 '잘 쓰고 싶을 때'다.
글을 잘 쓰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해서 책을 읽는다. 책을 많이 읽으면 잘 쓰고 싶어 져서 글을 쓰지 못한다. 참 이상한 순환이다. 글을 잘 쓰는 작가들의 책을 읽고 나면 내 글은 한없이 초라하다. 그 초라함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결국 글을 쓰지 못한다. 대단한 작가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은 말도 안 되지만 사람이 어떻게 말이 되는 일만 하고 사나. 작가들의 엄청난 노력으로 쓴 글을 나는 가볍게 생각했다. 내가 공부는 하지 않고 좋은 성적을 기대하는 학생 같다.
오늘 청소를 하기 전에 생각했다. 청소에 매우 집착하는 내가 제일 하기 싫은 것이 청소다. 청소를 하기 전에 머릿속에 청소에 대한 부담감으로 가득 차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냥 이불부터 정리하면 되는데. 청소를 해야겠다고 비장한 각오를 하기보다 늘어져있는 옷가지를 치우며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글쓰기도 그런 것 같다. 잘 써야겠다고 다짐하며 노트북 앞에 앉지 않고 그냥 앉아서 쓰면 어떨까. 대단한 글을 쓰겠다고 다짐해도 대단한 글이 안 나오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꼬박꼬박, 매일매일, 빠뜨리지 않고 내 마음을 정돈하고 돌본다는 마음으로 키보드에 손가락을 갖다 대면 되는 거였다.
음식을 해 본 사람은 안다. 지인들을 초대해서 먹이기 위해 요리를 할 때는 평소보다 더 맛이 없을 때가 있다. 망할 때도 있다. 요리 솜씨를 뽐내겠다고 아니면 요리를 잘한다는 칭찬을 듣고 싶어서 요리에 잔뜩 힘을 주면 오히려 음식이 맛이 없어진다. 내가 한 음식이 제일 맛있을 때는 평소 가족들에게 무심한 마음으로 요리할 때다. 물론 정성 한 스푼을 추가하는 것일 잊지 않는다.
집에 있으면서 매일 반복되는 집안일을 하다 보니 같은 일을 해도 내 마음에 따라 그 일에 대한 나의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자주 확인한다. 어떤 날은 집안일이 지겨워서 못 해 먹겠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또 어떤 날은 할 만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다 마음먹기 달린 일이다'는 어른들의 꼰대 같은 소리가 지겨워서 매번 외면했지만 그 엄정한 진실 앞에 나는 바짝 다가와 있다. 적어도 오늘만큼은. 왜냐하면 지금은 청소를 다 끝내고 매우 기분이 좋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