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무알코올 맥주 추앙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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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을 좋아한다. 아이들을 재우고 남편과 식탁에서 맥주 한 캔을 마실 때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하다. 그런데 내 주량은 딱 거기까지다. 한 캔을 넘기면 그다음 날은 숙취로 고생한다. 한 캔을 더 마실 수도 있다. 내 간이 그 정도는 된다. 내 몸은 숙취를 감당하지 못한다. 술푸다.
20대 때는 술을 마셔도 내 몸뚱이만 챙기면 되니 필름이 끊길 때까지 마시기도 했다. 그다음 날엔 두통과 메스꺼움으로 하루 내내 누워 있었다. 그렇게 해도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다. 청소, 빨래, 식사 준비, 육아의 의무가 그때는 없었으니까.
결혼 후에는 어쩔 수 없이 금주를 해야 했다. 임신을 했고 모유수유를 두 아이 연달아하다 보니 술을 마실 수 없었다. 그때는 여름에 시원한 맥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남편도 미안했는지 내 앞에서 술을 마시지 못했다.
소주는 별로다. 맛과 향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배들이 억지로 먹이던 술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어서 더 거부감이 든다. 내가 필름이 끊겼던 날도 아마 소주를 마셨던 것 같다. 아무튼 나에게 소주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다.
맥주는 정말 좋다. 배만 부르지 않는다면, 취하지만 않는다면 계속 마시고 싶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당긴다.
나는 가끔 좋은 안주를 저녁 식사에 내놓을 때는 맥주를 곁들이곤 한다. 근데 맥주를 마시고 나면 몸이 늘어진다. 아이들을 챙겨야 되는데 움직이기가 싫고 짜증이 난다. 되도록이면 아이들 앞에서 안 마시려고 하는데 하찮은 내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얼마 전, 남편이 직장 동료들과 골프 라운드를 다녀와서 무알코올 맥주를 마셔보았다고 했다. 골프 라운드 후 마셔보니 시원해서 맛이 좋았다고 했다.
'무알코올...이라고... 했다...'
그럼 취하지 않겠는데? 마시고 운전도 가능하겠네?
갑자기 귀가 번쩍 뜨인다. 눈빛이 반짝인다. 얼른 노트북을 켜고 무알코올 맥주를 검색했다.
진짜 알코올이 0%인 맥주가 있었다. 무알코올 맥주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신혼여행으로 갔던 일본에서 가이드가 무알코올 맥주가 있으니 마셔보라고 해서 마셔봤다. 맛이 이상했다.
'이것도 술이라고... 쯧쯧'
'무알코올은 술이 아니지!'
그때는 인생의 쓴맛을 안 봐서 맥주로라도 맛보고 싶었나 보다. 맛이 시시했다.
남편이 무알코올 맥주를 사 와서 마셔보았다. 이것은 신세계다. 맥주가 가져야 할 것들을 다 가지고 있었다. 탄산의 청량감까지도 느낄 수 있었다. 안 마실 이유가 없다. 당장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가격도 일반 맥주보다 더 저렴하다. 안 살 이유가 없다. 24캔을 사서 냉장고에 쟁여놓을 생각을 하니 아이들 어릴 때 기저귀, 분유, 물티슈를 쟁였던 것과 비슷한 묘한 안도감이 느껴진다.
무알코올 맥주를 마시면서 잠시 생각했다. 난 그동안 왜 취해 있었던 거지. 술을 마셨던 지난날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또다시 생각했다. 그럼 난 왜 지금은 취하고 싶지 않은 거지. 요즘은 취하지 않고 맨 정신으로 단정하게 살고 싶다.
그동안 일하면서 아이를 키우면서 힘들 때마다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때만이라도 술에 취해서 힘든 현실을 잊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꼰대 같은 직장상사와 꼴 보기 싫은 직장 동료들, 나에게 행복함을 주지만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아이들 모두 잠시 잊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직장에 다니지 않고 아이들은 어느 정도 컸다. 내가 술에 취해도 아이들이 알아서 씻고 잠을 잔다. 많이 편해진 거다. 지금은 내 주위에 딱히 형편없고 지겨운 인간들이 없다. 그래서 취하고 싶지 않다.
다시 직장에 다니면 나는 술 생각이 간절해질까? 무알코올 맥주는 술이 아니라고 말하게 될까?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온 남편을 보고 있는 지금, 무알코올 맥주 따윈 던져 버리고 그냥 맥주가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