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
햇빛이 나지 않은 하루였다. 다행히 빨래는 어제의 햇빛으로 잘 말렸다. 어제보다 기온이 1도 떨어졌는데 찬 기운이 느껴진다. 더울 때는 빨리 여름이 지나갔으면 했는데 막상 더위가 사라지니 추워질까 봐 겁난다. 선선한 날씨 덕분에 내 마음이 차분해진다. 기온이 더 내려가서 추워지면 나는 우울해질지도 모른다.
나는 추위를 싫어한다. 어릴 때 가난해서 난방을 원하는 만큼 하지 못했다. 어른이 되어 돈을 많이 벌면 겨울에 집에서 반팔을 입을 만큼 난방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나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난방비를 낼 수 있는 어른이 되었지만 가난이 몸에 배어 돈을 함부로 쓰지 못한다. 칠레에서는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한국처럼 바닥 난방이 아닌 천장 난방이라 효율이 떨어져서다.
한국에 있는 지인과 통화를 했다. 내가 이런저런 걱정을 털어놓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나는 나를 안심시켜 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를 자극하고 불안하게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둔다.
이 글을 쓰며 내가 멀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확인했다. 불안한 멘털을 가진 사람, 우리 친정 식구들도 포함된다. 칠레에 오면서 친정 식구들과 연락을 끊은 덕분에 나는 편안함을 찾았다.
오늘 시부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시아버지께서 친정 부모님의 안부를 물으셨다. 나는 잘 지내신다고 거짓말을 했다. 조금 슬펐다. 친정 식구들과 잘 지내지 못해서가 아니다. 시부모님께 진실하지 못해서 부끄러웠다. 당당한 며느리로 살았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칠레에 와서 나는 애쓰지 않아도 삶이 잘 살아진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서는 애써서 크게 이룰 일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내가 무언가를 이루려고, 무엇이 되려고 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저 하루를 성실하게 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실수까지 하지 않는다면 더 좋겠다.
오늘은 전화 통화로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지인과의 대화는 나를 걱정에서 멀어지게 하여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시부모님과의 대화에서는 감사함과 슬픔이 교차했다. 그 모든 감정이 내 몸과 마음을 통과했다. 조금 피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