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pr 15. 2024

주말에는 몸보다 마음이 지쳐

2024. 4. 14.

둘째가 장염에 걸렸다. 남편을 닮아 튼튼한 장을 가진 둘째에게 드문 일이었다. 나에게 둘째는 꽤 어려운 존재다. 큰아이는 순한 편이라 잘 설명해서 이해시키면 금방 따라주는 편이다. 둘째는 다르다. 장염에 걸렸으니 식사를 제한하고 죽만 먹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설명해도 군것질은 하면 안 되냐, 죽은 많이 먹으면 안 되냐, 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한다. 남편은 아이가 아파서 칭얼거린다고 이해하지만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같은 질문에 계속 답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아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십 번의 같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한 탓일 거다. 학생에게는 친절하게 답하려고 노력한다. 집에서마저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직업병인 것 같다. 내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에 화가 불같이 나는 것도 언젠가 학교에서 학생에게 내가 당한 수치심 때문일 것이다.


세끼의 식사를 차리는 일이 오늘은 부쩍 힘들었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밥을 하는 것보다 밥 하는 내내 둘째의 칭얼거림을 상대하는 일이 더 버거웠다. 칼질을 하는 중에 화가 나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낮잠을 자고 잘 먹고 푹 쉬었는데도 피곤했다. 또 내가 어디 아픈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학교에서 일하고 와서 아이들과 씨름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것도 직장 생활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도 일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들었다. 내 아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같이 살면서 다른 것들은 맞추며 살아야 하는 시기가 이제 온 것 같다. 은유 작가의 말대로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직장 동료를 대하듯 하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유난히 따지는 것이 많고 자기주장이 강한 둘째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랬나, 하는 질문을 수십 번도 넘게 한다. 사실은 질문이 아니라 확신을 하는 것이다. 나와 남편에게 하나하나 지적하는 둘째의 모습이 내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 더 화가 난다. 둘째가 더 보기 싫어진다. 예전에 이런 문제를 상담선생님께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둘째는 자기와 달라. 전혀 다른 존재야."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내가 왜 선생님의 그 말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았을까. 나는 둘째를 볼 때마다 또 다른 나라고 여겼다. 특히 못난 모습을 볼 때는 더 그랬다. 나에 대한 못마땅한 점을 둘째에게서 찾으면 몹시 화가 났다. 아마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나는 둘째의 칭얼거림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그 모습에서 나를 자꾸 찾았다. 나와 또 다른 존재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에야 확실히 알겠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저 아이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럼 나는 아이의 못난 모습을 보며 자꾸 열받지 말고 직장 동료의 기이한 행동으로 여기며 허허, 하고 어이없어하면 되는 걸까. 근데 내가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직장 동료의 행동에 심한 분노를 느낄 때가 있다.


너무 심각하고 비장해지지 말자. 둘째는 오늘 아팠고 주말은 조금 쉬고 싶었는데 아픈 아이를 더 챙겨야 해서 힘들었던 거다. 둘째는 나와 다르니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







매거진의 이전글 선거도 끝나고 시험도 끝나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