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다시 시작하는 마음
Apr 15. 2024
주말에는 몸보다 마음이 지쳐
2024. 4. 14.
둘째가 장염에 걸렸다. 남편을 닮아 튼튼한 장을 가진 둘째에게 드문 일이었다. 나에게 둘째는 꽤 어려운 존재다. 큰아이는 순한 편이라 잘 설명해서 이해시키면 금방 따라주는 편이다. 둘째는 다르다. 장염에 걸렸으니 식사를 제한하고 죽만 먹어야 한다고 내가 몇 번이나 설명해도 군것질은 하면 안 되냐, 죽은 많이 먹으면 안 되냐, 는 질문을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한다. 남편은 아이가 아파서 칭얼거린다고 이해하지만 나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나는 같은 질문에 계속 답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아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십 번의 같은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한 탓일 거다. 학생에게는 친절하게 답하려고 노력한다. 집에서마저 그런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참을 수 없다. 직업병인 것 같다. 내 아이의 버릇없는 행동에 화가 불같이 나는 것도 언젠가 학교에서 학생에게 내가 당한 수치심 때문일 것이다.
세끼의 식사를 차리는 일이 오늘은 부쩍 힘들었다. 괜히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밥을 하는 것보다 밥 하는 내내 둘째의 칭얼거림을 상대하는 일이 더 버거웠다. 칼질을 하는 중에 화가 나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낮잠을 자고 잘 먹고 푹 쉬었는데도 피곤했다. 또 내가 어디 아픈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직장에 나가지 않아도 이렇게 힘든데 나중에 학교에서 일하고 와서 아이들과 씨름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집에서 아이들과 지내는 것도 직장 생활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에서도 일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들었다. 내 아이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같이 살면서 다른 것들은 맞추며 살아야 하는 시기가 이제 온 것 같다. 은유 작가의 말대로 아이가 사춘기가 되면 직장 동료를 대하듯 하라는 말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유난히 따지는 것이 많고 자기주장이 강한 둘째를 볼 때마다 어릴 적 내 모습이 그랬나, 하는 질문을 수십 번도 넘게 한다. 사실은 질문이 아니라 확신을 하는 것이다. 나와 남편에게 하나하나 지적하는 둘째의 모습이 내 모습과 같다는 생각을 하면 더 화가 난다. 둘째가 더 보기 싫어진다. 예전에 이런 문제를 상담선생님께 털어놓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말씀하셨다.
"둘째는 자기와 달라. 전혀 다른 존재야."
선생님 말씀을 잘 따르는 내가 왜 선생님의 그 말에는 쉽게 동의하지 않았을까. 나는 둘째를 볼 때마다 또 다른 나라고 여겼다. 특히 못난 모습을 볼 때는 더 그랬다. 나에 대한 못마땅한 점을 둘째에게서 찾으면 몹시 화가 났다. 아마 오늘이 그날인 것 같다. 나는 둘째의 칭얼거림에 화가 난 게 아니라 그 모습에서 나를 자꾸 찾았다. 나와 또 다른 존재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오늘에야 확실히 알겠다. 내가 낳은 아이지만 저 아이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그럼 나는 아이의 못난 모습을 보며 자꾸 열받지 말고 직장 동료의 기이한 행동으로 여기며 허허, 하고 어이없어하면 되는 걸까. 근데 내가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나는 가끔 직장 동료의 행동에 심한 분노를 느낄 때가 있다.
너무 심각하고 비장해지지 말자. 둘째는 오늘 아팠고 주말은 조금 쉬고 싶었는데 아픈 아이를 더 챙겨야 해서 힘들었던 거다. 둘째는 나와 다르니 아이의 사소한 행동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