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에서는 주목받고 싶지 않아.
환전한 돈을 맡기러 남편과 은행에 갔다. 5개월치 생활비 정도 되는 큰 금액이었다. 남편 혼자 은행에 보내기 무섭고 불안해서 나도 따라나섰다. 돈을 각각 2개의 복대에 나누어 담았다. 남편과 나는 복대를 차서 불룩해진 배를 가리기 위해 긴팔 옷을 껴입었다.
현재 칠레는 여름이다. 낮 기온이 31도를 육박한다.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3시쯤 은행에 도착했다. 은행의 문은 닫혀 있었다. 경비원 아저씨가 나와서 오후 2시에 문을 닫는다고 했다.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졌다. 은행은 집에서 버스로 두 정거장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다. 대낮에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긴팔 옷을 입고 배에 무거운 복대를 차고 여기까지 왔는데. 돌아갈 때는 몸이 가벼워질 것이란 기대가 무너지자 짜증이 났다.
한국이 치안이 좋다는 사실을 여기 와서 확실히 알았다.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듣는 주의사항이 바로 '소매치기' 조심이었다. 칠레에도 남의 물건을 탐하는 자들은 있다. 여행객과 외국인(특히 동양인)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른다고 한다. 은행에 가는 길에 나는 복대를 찬 배를 손으로 가리며 조심조심 걸었다. 신호등을 건너려고 뛰다 복대가 끊어질까 봐 천천히 걸으려고 애썼다. 두렵고 불안한 마음으로.
칠레에서는 한인타운 말고는 동양인을 만나기 어렵다. 칠레에서 17년을 산 지인은 "우린 어딜 가나 남의 눈에 튀어." 하며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버스, 지하철, 마트에서도 동양인은 나 밖에 없는 것 같다.
밖에 나가면 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옷도 무난하게 입는다. 외출할 때 트레이닝복만 입는 나를 보고 남편은 현지인처럼 보인다고 놀린다. 큰소리로 대화하지 않는다.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행위는 자제한다. 그래야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사회적 소수자'로 사는 일은 불편하다. 한국에서는 여자로 살았어도 내가 소수자라고 느꼈던 적은 별로 없었다. 칠레에서 나는 외국인. 사회적 소수자다. 한국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사회적 소수자'의 개념을 가르치면서 차별하지 않아야 된다는 내용의 수업을 했다. 여기서 소수자로 사는 나는 타인의 차별과 상관없이 그냥 눈치가 보인다. 매사 조심해야 된다. 택시 기사가 거스름돈을 주지 않아도, 목적지와 먼 길로 돌아가도, 마트 계산 직원이 계산 실수를 해도, 누군가의 불친절을 경험해도 꾹 참는다. 한국에서라면 부당하다고 따졌을 일도 여기서는 혹시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두려워 참게 된다.
가끔 머리로만 알던 것을 몸으로 경험할 때가 있다. 이성애자인 나는, 비장애인인 나는 그들의 불편에 무지했다. 책에 나온 대로 그들을 차별하면 안 되고 그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법과 제도,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정도만 외우고 있었다. 칠레에 와서 어딜 가나 사람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는 나는, 범죄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나는,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을 보는 나는 모든 게 불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