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영 Nov 03. 2022

차를 팔아야겠다

몇 해 전에 차를 샀다.


주된 목적은 번잡한 출퇴근으로부터의 해방. 그런데 허세 부리느라 보태고 보태다 덜컥 외제차를 사버렸다. 얼마간의 빚까지 져가며 무리하게 구입했지만, 중고니까 합리적인 소비였다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처음에는 참 좋았다. 만원 버스와 지옥철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기에, 비싼 주차료와 기름값이 아깝지 않았다. 교통체증 때문에 시간적 보상은 받지 못했으나, 통근길의 쾌적함을 떠올리며 합리화했다.


그러던 중, 어쩌다 보니 회사 근처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차로 오갈만한 거리가 아닌 위치. 그래서 특별한 일이 없으면 평일에는 더 이상 운전대를 잡을 일이 생기지 않았다. 차의 쓰임이 현저히 줄어들기는 했지만, 주말에 데이트하려면 당연히 차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또다시 합리화했다.


이제 여자 친구와도 헤어지게 되었다. 주말에도 차를 사용할 일이 드물어진 것이다. 화석이라도 된 듯 주차장에 가만히 서있는 차를 멍청하게 바라보다 가끔 한 번씩은 운행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동을 걸고 무작정 도로로 나왔다. 김연우의 노래 이별택시 가사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정처 없이 떠돌다 결국 한 시간 만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애물단지를 팔기로 결심했다.




딱히 바람직하다 할 수 없는 결정을 하고, 되돌리기엔 이미 늦었다며 합리화하고, 꾸역꾸역 버티다 결국 원래의 목적 같은 건 전부 잊어버리는.


낭비의 시간, 정확히는 감가상각의 시간을 잔뜩 흘려보내고 나서야 겨우 정신이 들었다.


‘잘못된 선택에 끌려다니지 말자.’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쉽게 지지 말자.’

‘본질과 목적에 충실하자.’


몇 해에 걸쳐 비싼 돈 들여 배운 것 치고는 참, 너무 당연하고 뻔한 이야기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임 없는 비극, 승자 없는 다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