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이 넘는 인원이 죽거나 다쳤다.
지난 29일 밤, 이태원에서 벌어진 참사. 여전히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이다. 다른 나라가 아닌 우리나라, 2022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비극인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 8년 만에 일어난 대형 사고에 사회는 소란하다. 누군가는 책임자 혹은 가해자를 찾기 위해 바쁘고, 분란을 좋아하는 누군가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온갖 이유로 갈등을 조장하기에 여념이 없다.
참, 무서울 정도로 빠른 반응이다.
정부는 일주일을 국가 애도기간으로 정했고, 나는 공기업을 다니는 탓에 검은 리본까지 받았다. 애도까지도, 속전속결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친다. 소모적인 논쟁과 영혼 없는 대응. 이게 맞나 싶을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이번 사고가 예상 가능했던 인재(人災)라고 말한다. 경찰이 더 많이 배치되었다면, 신고가 들어왔을 때 초동대응이 더 빨랐다면, 그에 앞서 H호텔의 불법 증축을 단속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고. 그래서 그들은 주로 정부와 공권력을 탓한다.
그러나 어떤 이들의 생각은 다르다. 배치된 경찰 규모는 예년 수준이었고, 수가 더 많았어도 권한이 약해 사람들을 통제하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또한 알려진 것처럼 몇몇 정신 나간 놈들의 고의적 행동이 직접적 원인이었던 만큼, 이번 사고는 예상할 수 없었던 천재(天災)라고. 그래서 그들은 굳이 책임자를 찾지 않는다.
또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어떤 이들은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이 옳지 않다고 여긴다. 사고는 안타깝지만, 개인의 자유의지가 모여서 생긴 일까지 국가가 책임져야 하냐는 것. 더군다나 정말로 지원금을 받아야 할, 충분히 받을만한 사람들은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슈가 됐다는 이유로 금전적 보상을 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대다수의 사람이 지원금 지급에 반대했다고 한다.(기사 참조)
이에 반해, 어떤 이들은 보상금 지급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 상황의 긴급성으로 국가 차원에서 용산구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으니, 법에 따라 이루어지는 지원 역시 합당하다는 것. 그리고 기준이 모호하다면 그것을 고쳐 수혜자를 늘려야지, 유가족에 대한 위로금을 주지 않은 것만이 능사는 아니란 의견이다.
상기 두 가지의 견해 차이를 포함, 이번 참사를 둘러싼 다툼들에 과연 모두가 만족할 만한 답이 있을까?
나는 감히 ‘없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고위 공직자가 책임지고 물러난다면 이런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다고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유가족 위로금을 지원하지 않는 것이 공정한 사회로 나아가는 방법일까? 그럼 무턱대고 지원하는 것은 과연 공정할까?
어느 것 하나 명쾌하게 대답할만한 게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사회는 다툰다. 답이 없는 문제라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모두들 분노에 찼다.
책임 소재가 애매하니 떠넘기기 위해 싸우고, 기준이 애매하니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둘러댄다. 누군가는 정부를 욕하고 누군가는 그들을 욕하며, 이토록 비극적인 사건을 창으로, 방패로 삼아 전쟁한다. 관련 기사 댓글창에는 분노, 또 분노밖에 읽히지 않는다.
그저 다툼을 위한 다툼, 승자 없는 다툼의 반복일 뿐. 앞으로도 당분간은 매스컴을 통해 지겹도록 볼 것만 같아 벌써부터 진이 빠진다.
제발, 그만 싸우자. 명백한 이유도, 근거도, 목적도 없는 분노 따위는 가라앉히자. 방향 잃은 분노와 다툼의 결과는 결국 분열과 갈등, 시민의식의 후퇴이다. 이번 참사의 원인 중 하나가 시민의식의 부재였다는 건 모두 잘 알 테니. 제 말만 맞다고 싸우지 좀 말자.
그리고 제발, 분노 대신 평정을 채우자. 충분히 애도하고, 평정심을 되찾고,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가자.
싸우기 위한 비난 대신 고치기 위한 비판을, 이기기 위한 언쟁 대신 발전을 위한 논의를 하자. 금세 달아올랐다 금세 잊어버리는 우리의 고질병을 버리고, 차분히 원인을 파악하여 온전히 개선하자. 국가 탓만 하지 말고, 개인 차원에서도 뚜렷한 경각심을 학습하자. 그리고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자.
이태원 참사는 주최자가 불분명한 축제로 인해 발생한, 책임자와 가해자 또한 불분명한 비극이다.
불분명한 잘못을 누군가에게 덮어 씌우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우리 모두가 책임의식을 조금씩 나눠가지는 것이, 그래서 다시는 이러한 국가적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분명한 희생자들에 대한 올바른 애도가 아닐까.
범인(凡人)의 짧고도 뻔한 상념은 여기까지다.
이유와 원인을 막론하고, 불의의 사고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빈다. 부디 그들을 둘러싼 협잡꾼들의 다툼이 대중을 지치게 하지 않길. 그래서 애도의 마음마저 퇴색되는 일이 없길.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