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작은 도서관에서 시작된 회고(回顧)
카페에서 밀려나다시피 나왔습니다. 증권거래소가 장을 열지 않는 주말에는 손님이 뜸해서인지 스타벅스 매장이 탄력적으로 운영되나 봅니다.
아내가 인도네시아 대사관에서 나오려면 아직 한참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이 시간에 문을 여는 다른 카페가 어디 없는가 두리번거립니다. 그러다 문뜩 고작 한 시간 남짓 자리에 앉아 있겠다고 음료값을 다시 치르려니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도서관이라면 주말에도 문을 열지 않을까?'
아쉽게도 국회도서관은 주말이면 오후 5시에 문을 닫습니다. 그런데 좀 더 늦은 시간까지 개방하는 작은 도서관이 근처에 있더라고요. 독서모임방처럼 아담한 공간에 마련된 작은 서가에 책이 듬성듬성 꽂혀있었습니다. 아무 책이나 하나 골라서 아내 전화가 올 때까지 시간을 죽일 작정이었지요. 그래서 역사책같이 너무 무거운 책 말고 단편 소설이나 수필 같은 가벼운 이야기책을 하나 고르려 했어요. 그러다 『내 삶의 글쓰기』라는 책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 책이 저를 '브런치'로 인도했습니다.
남이 쓴 글을 요약해서 전달하는 소일거리를 수년째 하느라 정작 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요즈음은 출판번역가가 되겠다며 뻔질나게 번역아카데미를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알아보던 중이었지요. 하지만 번역은 남이 쓴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이니 여기에 제 생각이 투영될 여지는 없습니다.
제 목소리가 담긴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압력밥솥에서 김 나오듯 삐져나오기 시작했고, 그래서 '얼룩소'에 몇 편 끄적여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 두서가 없는 글이었습니다. 쓰고 싶은 것은 많은데 도대체 무엇을 쓸지 정하지 못했던 탓이지요.
이렇게 우연히『내 삶의 글쓰기』의 첫 장만을 읽었을 뿐인데 회고(回顧)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대중에게 글쓰기를 가르친다는 글쓴이는 모든 사람의 삶 속에 제재(題材)가 있고 회고야말로 작가로서 첫걸음으로 안성맞춤이라고 조언합니다. 오르한 파묵의 작품 속에도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대학원 수업 시간 때 들었던 이난아 선생님의 말씀도 떠오릅니다.
"너는 무슨 놈이 대학 졸업에 10년이 넘게 걸리냐. 네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열 권은 족히 나오겠다"
어머니한테 종종 듣곤 했던 비아냥이 귓전에 울립니다.
'그래, 내 이야기를 진짜 한번 써보는 거야'
(2권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