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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Jul 07. 2024

지도 위에 찍힌 발자국들

균형 잡기

삼월의 하늘은 우리 가족의 생이별에 구슬피 눈물을 흘리나 봅니다. 어머니와 성민이를 태운 비행기가 저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하늘에서 떨어지던 눈가루는 어느샌가 비로 바뀝니다. 김포공항에 넷이 갔다가, 올 때는 두 사람 된 아버지와 저는 허기를 채우려고 호텔 캐슬의 레스토랑에 앉아 생경(生硬)한 서양 요리가 적힌 메뉴판을 대충 보고 아무거나 골랐습니다. 음식이 나올 때까지 부자간의 말 없는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아버지께서 먼저 말문을 여셨습니다.


"그래, 너는 사우디에 언제 간다고 했지?"




성민이가 가족의 품을 떠나 이역만리 뉴질랜드로 가게 된 데에 못난 형의 입시 실패가 한몫 톡톡히 했습니다. 그렇게 과외를 시켜도 '스카이(SKY)'는커녕 외대에도 못 보낼 바엔 차라리 그 돈으로 외국 유학을 보내 영어 하나라도 잘하게 만들면 더 낫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던 겁니다. 다행히 이제 막 발걸음을 떼었던 아버지의 사업은 자리를 잘 잡아가는 것 같았고, 어머니도 경제적으로 자신감을 가지셨지요.


그런데 성민이는 유학이 그다지 내키지 않았습니다. 하라는 데로 군말 없이 잘 따르는 순둥이였기에 등 떠밀리듯 짐을 싸게 됩니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도 모자랄 판에, 정서적으로 한창 민할 나이에 홀로 험로를 개척하러 나간 거죠. 유학이란 게 로는 화려해 보여도 절대 쉽지 않은 가시밭투성이 길이랍니다. 어머니는 한적하디 한적한 푸른 초원의 나라 뉴질랜드에 성민이를 떨궈놓고 홀로 오는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국민학교 때 반공 포스터 그리기 시간에 북괴군을 무찌르는 미군 탱크를 도화지 위에 그려 넣고 미국 국가를 흥얼거리곤 할 정도로 미국을 좋아했던 아이는 이제 대학물 좀 먹고 머리가 큰 대(大) 자로 커졌다며 미국을 싸늘한 눈초리로 바라보게 됩니다. 아랍지역학과에 들어가더니 팔레스타인 해방 문제를 마치 제 일이라도 되는 양 챙기면서 뜻을 함께하는 또래 동지들과 의기투합하여 밸푸어 선언[1]과 점령의 부당함에 대해 열변을 토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스라엘의 든든한 뒷배로 버티고 선 미국이 좀 꼴 보기 싫어졌지요. 아버지께서는 혹여나 제가 골수 반미(反美) 분자로 빠지지나 않을까 걱정하셨습니다. 게다가 얼마 후 911테러가 발생하는 바람에 삐딱한 시각은 자칫 불온하게 비칠 수도 있었고, 그것 때문에 밥상머리에서 아버지와 종종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제가 좌충우돌했지만, 버지의 우려와는 달리 그렇게 극단적으로 삐뚤어지지는 않았답니다.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다에 주저앉을 뻔했던 성민이를 더 큰 물, 더 넓은 세상 미국에 풀어놓아야 한다고 어머니를 막 부추겼던 것도 저였던걸요.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미국과 16강에서 대적했던 멕시코를 응원하며 미국에 대한 반감을 표출한 건 애교로 봐줄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놓고 8년 후 남아공 월드컵 때는 말이죠, 이스라엘의 점령지인 골란고원이 바로 코앞인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공공연하게 미국을 적(敵)으로 지칭하는 반미의 심장부의 쇼핑몰 카페에서, 아랍어학당에서 사귄 파키스탄계 무슬림 미국인 친구 사이프(Saif)와 함께 16강에서 아프리카 팀 가나를 상대하게 된 미국 국가대표팀을 응원했지요. 그때 사이프와 함께 감히 시리아 땅에서 '유에스에이(USA)'를 외치는 정신 나간 짓을 할 뻔했는데, 사이프가 데려왔던 흑인 여성이 "쉿! 너희들 미쳤니? 여기서 그러면 아주 경을 칠 거다. 난 시리아에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아!"라며 우리를 제지하지 않았더라면 순식간에 망동을 저질렀을지도 모릅니다. 


또 시간이 흘러 제가 오스만 제국사에 미쳐서 이스탄불을 들락날락하며 터키어를 공부할 적에는 말이죠, 하버드 대학교에서 오스만 제국사를 전공하는 유대계 미국인 여성과 한 반이 되었습니다. 그녀와 크즐바쉬(Qizilbashi)[2]까지 소환하며 깊은 지적 대화를 나누다가, 주말 배편으로 부르사(Bursa)로 잊지 못할 답사 여행을 떠나기도 했죠.


겪어보지도 않고 섣불리 경계를 는 게 어리석기 짝이 없다는 걸 배워가고, 지도 위에 뚜벅뚜벅 발자국 찍으며 조금씩 깨달아가는 겁니다. 이리로 흔들렸다 저리로 흔들렸다 하면서도 스스로 균형을 잡아나가는 오뚝이처럼 말이죠.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는 데 단지 시간이 좀 걸렸던 것 같아요. 이제 그 이야기보따리나 잔뜩 풀어놔 볼까요?



1) 1917년 영국의 아서 밸푸어 외무장관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수립을 약속한 선언이다.

2) 아나톨리아 동부와 아제르바이잔 지역에서 세력을 떨쳤던 시아파 튀르크 전사집단이다. 이들은 이란에서 사파비 왕조가 성립하는데 초석을 놓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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