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가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 13개를 따고 종합순위 10위 안에 들다니 참 자랑스럽습니다.
개회식에서 대한민국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소개하질 않나...
시작부터 눈살을 잔뜩 찌푸리게 했던 파리 올림픽이 그래도 별 탈 없이 잘 마무리되었습니다. 팀 코리아(Team Korea)가 32개의 메달(금메달 13개)을 획득하여 네덜란드와 독일에 이어 종합 10위에 오르면서, 선수들은 대한체육회가 보수적으로 잡았던 목표를 크게 초과 달성하는 업적을 파리에서 이뤘습니다. 그래서 올림픽 관련 소식을 전하는 유튜브 영상 댓글 창을 열어보면, "우리나라처럼 작은 나라가 강대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자랑스럽다"라는 벅차오르는 기쁨을 표현한 누리꾼들의 글이 쉽게 눈에 띕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과연 그렇게 작은 나라일까요?우리나라의 체급(體級)은 도대체 어디쯤 속할까요?
파리 올림픽 종합 순위 10위 안에 든 나라들은 다들 그만한 덩칫값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출처: 네이버)
국력을 정량적(定量的)으로 평가할 뚜렷한 기준이 없기에, 한국의 체급을 정하려면 여러 지표를 두루 살펴보고 질적판단을 내려야 합니다. 이 가운데 전쟁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싱어(David J. Singer)가 고안한 국가역량종합지수(CINC: Composite Index of National Capability)가 국력을 평가할 때 자주 인용됩니다. CINC 측정 공식은 총 인구, 도시 인구, 철강 생산 속도, 에너지 소비율, 군사비 지출 비율, 군인 비율 6가지 측정 요소를 6으로 나눠 평균값을 도출하는 것인데, 이는 경성 권력(hard power)만 반영하고 문화 외교적 영향력 및 사회적 안정성 등이 구성요소인 연성 권력(soft power)을 간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한 한계를 인정하면서 CINC를 평가 지표로 삼더라도, 대한민국의 국력은 2007년 기준 세계 8위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에 앞서며 비교적 높게 나옵니다. 특히, CINC에서는 배제된 연성 권력 구성요소를 측정에 반영하여 국력을 수치화했더니, 대한민국의 순위는 6위로 두 단계 더 올라서게 됩니다. 올림픽 메달 순위와 얼추 비슷하지 않은가요? 저는 이 지표들을 보면 작은 우리나라가 체육 분야에서 유독 강세를 띤다기보다는, 그만한 덩칫값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경성 권력과 연성 권력 구성요소를 적절히 배합하여 국력을 측정한 지표에 따르면 한국의 국력은 세계 6위다. (출처: 중앙일보)
이러한 사회과학적 연구 조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한국을 작은 나라로 여기는 까닭을 좁은 국토와 상대적인 국력 차이에서 찾아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학교 다닐 때 사회 시간에 다 배웠다시피 남한 면적은 약 10만 평방킬로미터(㎢)로 세계 107위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꽤 협소한 땅덩어리 안에서 바동거리면서 주변에 있는 큰 나라의 침략에 늘 시달려왔다는 의식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게다가한반도 4강(强)이라 불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이 각축을 벌이는 지정학적 단층 지대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스스로 약소국으로 규정했던 게 아닐까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인구 5천만 명을 지니면서 1인당 국민총소득(GNI) 3만 달러가 넘는 덩치가 제법 큰 나라입니다. 소위 '30-50클럽'(인구 5,000만 1인당 GNI 3만 달러 동시에 충족하는 국가)에 가입한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전 세계에 여섯 개밖에 되지 않습니다. 요즘 인구가 줄어들고 있어 걱정된다지만, 인구 자체만 놓고 봐도 세계 30위 안쪽에 들어갑니다.
게다가 한국은 미래 기술의 '쌀'이라는 반도체 공급망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고, 오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서방 진영의 무기 재고가 바닥나는 상황에서 우수한 성능을 인정받은 'K-방산' 무기를 여러 경로로 우크라이나 측에 전달하여 침략자인 러시아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방해하는 데 크게 기여하는 등 국제정치경제 무대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글로벌 규범 형성을 주도하는 강대국 모임인 G7에 대한민국을 넣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미국 싱크탱크에서도 나오고 있는 겁니다.
따라서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체급은 '작은 약소국'이 아닌 '중견국(middle power)'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치학자들은 중견국을 자국이 위치한 지역에서 상당한 물리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서 지정학적 요충지에 붙어있는 국가로 정의합니다. 또한, 국제법과 국제규범을 준수하면서 국제질서를 수호하는 데 동참하는 모범적인 규범 수용자이자 국제 분쟁이 발생할 시 무력 사용을 자제하여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소하는 한편 국제 제도와 기구를 통한 다자주의적 해법을 선호하는 선량한 국제시민의 역할을 자처하는 국가가 중견국의 특성을 보인다고 설명합니다(김우상, 2016). 세계 5위의 군사력을 유지하는 한국은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를 지지하면서 규범 수호자의 역할을 확대해 나가고 있으므로 중견국 범주에 잘 들어맞는 국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