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색 바탕의 코소보 국기는 유럽연합(EU) 기를 연상시킵니다. 코소보 국토를 상징하는 지도 윤곽선이 그어졌고, 여섯 개의 흰색 별이 그 위에 놓여있습니다. 지도와 별은 코소보라는 새 나라의 속을 채울 국가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지도는 코소보 사람들이 피와 땀을 흘려 건설한 든든한 보금자리를 뜻하고, 별은 다양한 민족이 코소보라는 터전 안에서 하나로 뭉친 국민으로 평화롭게 공존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냅니다.
코소보 국기의 여섯 개 별은 코소보가 다민족 국가임을 상징한다.
코소보 국민의 90% 이상이 알바니아계이지만, 나머지 다섯 개 별을 이루는 보스니아인, 고라니(Gorani)인, 로마(Roma), 세르비아인, 튀르크인도 그 속에서 평등한 사회 일원으로 대접받는 다민족 사회 건설이야말로 코소보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그래야만 주권 국가임을 대외적으로 확실하게 인정받지 못한 코소보가 국가 통치 권력의 내적 정당성을 널리 인정받고 생존해 나갈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알바니아계도, 세르비아계도 모두 '코소보인'이 되어야 합니다.
코소보의 일방적인 분리 독립 선언이 '대알바니아(Greater Albania)' 구상을 실현하려는 알바니아인들의 음모라고 주장하면서 코소보 독립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몬테네그로, 그리스, 마케도니아 등 알바니아의 이웃 국가에도 흩어져 살고 있거든요. 코소보 내전 때 세르비아군에 맞서 싸우기 위해 조직되었던 코소보해방군(KLA: Kosovo Liberation Army)이 코소보와 알바니아의 통합을목표로 삼기도 했고, 코소보 국기를 달고 하계올림픽에 출전한 알바니아계 여자 유도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내자, 알바니아군이 해당 선수들에게 대령 계급을 수여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코소보가 알바니아에 통합될 때까지만 잠시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코소보의 정체성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발언이 코소보 정부 내각 장관의 입에서나오는 바람에 큰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알바니아가 코소보를 흡수할 목적으로 독립을 부추겼다는 음모론이 꺼지지 않는 겁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만에 하나라도 코소보가알바니아에 흡수된다면 가뜩이나 영토 분쟁으로 시끌시끌한발칸반도에 정말로 좋지 않은선례를 남기게 됩니다. 코소보 말고도 다른 지역에 사는 알바니아 사람들이 모국 정부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영토를 들고 알바니아에 들어가겠다는 위험한 생각을 품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경 안에 거주하는 크로아티아인과 세르비아인이 '대크로아티아'와 '대세르비아'를 부르짖으며 다시 내전을 일으킬 가능성이 생기지요. 이는 코소보 독립을 승인해 준 EU가 절대 원치 않는 시나리오입니다.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마케도니아, 그리스,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국경 너머에 흩어져 거주하고 있다. (출처: The Economist)
따라서 코소보 독립의 진정성에 따라다니는 물음표를 제거하려면 코소보가 유엔과 EU의 후원 없이도 독자적으로 생존할 능력을 갖춘 국가라는 사실을 입증해야 하는데, 코소보가 포용적인 민주주의 정치 문화를 발전시키고 경제 성장을 도모하여 코소보에 사는 사람들이 코소보를 나의 조국이라고 느끼고 애착을 가질 가치가 있는 나라로 거듭나야 합니다. 에르네스트 르낭(Ernest Renan)의 표현을 빌자면, 핏줄은 다를지언정 함께 살겠다는 바람으로 모두가 공통의 유산을 계속 가꾸어나가겠다는 의지로 뭉친 국가 공동체를 건설해야 하는 과제를 코소보가 안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코소보의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만연한 부패 문제를 척결하고 비(非)알바니아계 주민, 특히 코소보 국토 북쪽에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세르비아계 코소보 국민도 법 앞에서 동등한 권리를 인정받는 공동체 일원이라는 시민 정체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사회 조직과 법제가 재정비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코소보가 국기에 그려진 대로의 국토를 온전하게 수호하고 더 많은 국가로부터 자결권을 인정받아 독립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John Hutchinson & Anthony D. Smith. (1994). Nationalism. Oxford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