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무슨 말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벵골어로 막 떠들어대는 통에 식당 안이 무척 소란스럽습니다. 아내와 저는 이태원 중앙성원에서 무슬림 금요 회중예배를 마치고 나서 점심을 해결하려고,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성원 바로 앞에서 운영하는 식당에 왔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 목소리 크기로 유명한 바딱(Batak)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 온 것 같다고 말하며 아내가 웃네요. 그런데 저는 고성으로 오가는 대화 내용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들이 무엇 때문에 이렇게 언성을 높이는지 대충짐작이 갑니다.
방글라데시를 15년간 통치하면서 무슬림 세계에서 '최장수' 여성 지도자라는 꼬리표를 달았던 셰이크 하시나(Sheikh Hasina) 총리가 그간 권위주의적 통치 행태와 부정부패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여 폭발하고 만 대학생 시위 군중에 떠밀려 고별 연설도 하지 못하고 8월 5일 총리 관저를 떠나 헬기를 타고 도망치듯 방글라데시를 빠져나갔습니다. 시위 군중은 셰이크 하시나 총리의 부친(父親)이자 방글라데시 독립 전쟁 영웅으로 추앙받는 셰이크 무지부르 라흐만(Sheikh Mujibur Rahman)의 동상까지 훼손하며 엘리트 정치 가문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위대한 아버지의 후광도 이제 그 빛이 바랜 셈이네요.
독립 전쟁 유공자 후손들에게 공직 일자리의 30%를 할당하기로 한 정책을 정부가 내놓은 것이 시위의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청년 실업률이 40%가 넘어 대학생들이 졸업하고 나서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 와중에 정부가 집권 여당인 아와미동맹(Awami League) 지지자들이 주로 수혜자가 될 새 보훈정책을 들고나오니 청년들이 단단히 뿔이 난 겁니다. 저 멀리 벵골만에서 벌어지는 학생 시위의 열기를 방글라데시 출신 이주노동자가 많이 모이는 이태원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 국기와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중앙성원 계단에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모든 국민이 학생들이 내세우는 대의를 지지한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셰이크 하시나 총리가 독재를 하긴 했으나, 극빈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던 국민 경제가 2009년부터 줄곧 이어진 아와미동맹 집권 기간에 연 6~7%대의 고도 성장을 이어오며 1인당 GDP에서 인도를 앞지른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식당에서 언성을 높이며 열변을 토했던 벵골인 아저씨는 셰이크 하시나 정권이 퇴진한 후의 국가의 미래를 걱정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한 개발독재 기간에 눈부신 경제 성장 신화가 작성되었다고 하더라도, 부(富)가 소수의 손에 더욱더 집중되어 소득불균형 문제가 악화했고, 열악하다는 말로는 도무지 표현이 안 될 정도로 처참한 노동환경과 아동 노동 착취 같은 심각한 인권 문제 발생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철저히 외면해 온 정권의 정당성(正當性)을 의심하게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권력 공백이 발생하자 교통정리에 나선 군부는 학생들의 요구대로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함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를 임시 정부 수반으로 지명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을 제공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한 사회적 기업가로 명망이 높은 인물인데, 아와미동맹 정권의 눈 밖에 나면서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정권 붕괴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귀국했습니다. 그는 취임식에서 "방글라데시가 제2의 독립을 이룩했다"라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국정을 안정화하고 민주적 절차에 따라 새 총리를 선출해야 할 어려운 임무가 무함마드 유누스의 어깨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만약 방글라데시에서 임시 정부가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예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군부가 병영에서 뛰쳐나와 국정을 장악할 터이고, 어렵게 다시 찾아온 방글라데시의 민주주의 꽃은 활짝 피어보지도 못하고 빨리 시들어버리게 됩니다. 1억 7천만 국민의 미래가 임시 정부에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