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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준영 Aug 03. 2024

코소보의 분리 독립은 완수되었나?

미완의 독립

코소보는 국가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우리는 코소보 탄생의 본질을 파헤쳐봐야 합니다.



코소보는 세르비아공화국(Republic of Serbia)라는 주권 국가(sovereign state)로부터 일방적인 분리 독립(secession)을 선언하면서 태어난 국가입니다. 특정 지역이 모국(existing state)의 영토 일부와 그곳에 사는 주민을 떼어내어 그 자리에 새로운 국가를 창설하는 행위로 분리 독립을 정의해 볼 수 있습니다(Peter Radan, 2007). 그러니까 코소보의 독립이 기정사실화하면 세르비아는 영토가 축소됩니다. 땅속에 묻힌 지하자원과 산업시설 같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자산도 함께 잃게 됩니다. 극적으로 영토보전(terriotorial integrity)이라는 자국의 중대한 이익이 훼손되니 세르비아가 코소보 독립에 크게 반발하고 있는 겁니다.


주권 국가의 영토보전은 유엔 헌장에 명시돼 있을 정도로 오늘날 국제법질서의 근간을 이루는 원칙이지요. 따라서 세르비아의 공식적인 승인 없이는 코소보의 독립 선언이 법률적으로 유효하지 않으며, 이러한 코소보를 국가로 승인하는 일은 부당한 내정문제간섭이나 개입(intervention)으로 비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미국을 포함해 우리나라와 일본 등 세르비아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많은 나라가 코소보를 국가로 승인하여 논란이 일고 있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코소보는 독립을 완수하지 못했고 여전히 분리 절차를 밟는 입니다.




코소보의 분리 독립 선언은 자결권(self-determination) 행사로써 정당화되고 있습니다. 자결권은 일정한 집단이나 공동체가 외부의 억압에 놓이지 않고 스스로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생활의 영위를 독립적으로 결정할 고유한 권리를 보유한다의미를 담고 있습니다(홍성필, 2016). 참혹했던 제1차 세계대전을 목도한 자유주의자들은 인류가 다시는 이러한 전쟁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며 국제 평화를 위한 처방을 내놓았는데,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14개조 평화 원칙에도 자결권이 담겼습니다. 그리고 유엔총회가 1960년 12월 14일에 식민지 독립부여선언(Declaration on the Granting of Independence to Colonial Countries and Peoples)을 채택하면서 자결권은 국제법상 권리로 자리매김합니다. 그 덕분에 아프리카 및 아시아에서 탈식민화(decolonization) 바람이 불었고, 수많은 독립 국가가 탄생하지요.


구 유고슬라바이사회주의연방 지도. 코소보는 유고 연방의 구성공화국 중 하나인 세르비아공화국 내의 자치주였다.


그러나 유엔은 자결권 행사의 범위를 좁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미 탈식민화에 성공하여 주권 국가로 독립한 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소수 집단이 자결권 행사를 내세워 분리 독립을 선언할 때 국제사회는 이러한 독립 선언을 합법적인 자결권 행사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나이지리아에서 비아프라(Biafra)가 자결권 행사를 내세우며 분리 독립을 선언했을 때 국제 사회는 이를 외면했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분리 독립을 선언하면 주권 국가의 영토보전 원칙이 뿌리째 흔들리고 독자 생존 가능성마저 의심되는 수많은 국가가 난립하여 자칫 국제 질서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유엔은 장래에 탈식민화 목표를 이뤄야 할 비자치지역(Non-Self-Governing Territories) 명단을 작성하여 보관하고 있는데, 이미 대부분 국가가 독립을 완수했습니다. 2024년 7월 기준으로 대개 작은 섬으로 이뤄진 17개 지역 만이 비자치지역 명단에 남았습니다. 한편, 구(舊) 유고슬라비아사회주의연방공화국(SFRY)을 이루는 구성공화국 중 하나인 세르비아공화국 내의 일개 자치주(autonomous province)였던 코소보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유고 연방이 붕괴하여 구성공화국들이 독립했을 때 이들 국가를 승인한 유럽연합(EU)은 코소보의 분리 독립 가능성을 부인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1989년 세르비아 골수 민족주의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Slobodan Milošević)가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으로 집권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자결권은 내적 자결권과 외적 자결권으로 구분됩니다. 외적 자결권은 새 국가를 창설하여 모국으로부터의 완전한 분리 독립을 뜻하지만, 소수 민족 공동체는 자치권 획득이라는 내적 자결권 행사를 통해 분리 독립 없이도 집단 정체성을 보존할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밀로셰비치가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면서 그동안 제한적으로나마 보장됐던 코소보 내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내적 자결권이 침해됩니다. 게다가 그는 유고 연방군을 투입하여 코소보 의회를 해산하는 한편 알바니아어로 가르치는 학교를 폐쇄하는 등 계획적으로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문화 말살에 나섭니다.


이에 알바니아계 코소보 주민들은 자신들의 역사, 문화, 언어를 보존하기 위한 투쟁에 나섰고 이듬해 9월에 주민투표를 실시하여 세르비아와 유고 연방으로부터 독립하겠다는 의사를 대외적으로 표방합니다. 그리하여 유고 연방군과 코소보 게릴라 간에 내전이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민간인 집단 학살, 강간 같은 전쟁범죄 행위가 발생합니다. 결국 나토(NATO)가 코소보 편에 서서 이 사태에 개입하는데, 나토군의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 사건도 이때 벌어졌습니다. 제가 12년 전 베오그라드를 방문했을 때 그 당시 나토군 공습을 받고 무너져 내린 유고 연방 국방부 건물이 흉물처럼 남아있었습니다. 결국 유엔안보리 결의안 1244호가 채택되어 유엔이 관할하는 코소보임시행정단(UNMIK) 코소보에 수립되는 것으로 전쟁이 일단락됩니다. UNMIK는 지금도 코소보에 존속하며 평화 및 치안 유지 활동, 개발원조, 코소보와 세르비아 간의 교섭 지원 등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한편, 코소보의 지위 문제와 관련하여 코소보와 세르비아 양측의 지루한 협상에 진전이 없자, 코소보 의회가 2008년 2월 17일에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해 버리는데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영토보전원칙은 국가 사이에서만 적용되는 규범이며 국내 내부의 조직이나 단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라는 권고적 의견을 제시합니다. 쉽게 말해, 코소보 독립 문제는 국제법의 판단 영역이 아니라는 소리입니다. 따라서 코소보의 독립 문제는 국제사회의 행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정치적 결단에 맡겨지게 되었고 지금도 열띤 논쟁거리입니다. 코소보가 독립을 최종적으로 승인받으려면 유엔에 가입해야 하는데, 거부권을 지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코소보 독립에 반대하는 입장이고 여전히 많은 나라가 코소보 독립을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이라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 세계 국가의 수를 셈할 때 코소보를 넣지 않았습니다. 유엔회원국 193개의 바티칸 시국을 더하여, 우리는 아직 최솟값 194개에 머물러있습니다.



참고문헌:


Peter Radan. (2007). Creating New States: Theory and Practice of Secession, Ashgate Publishing, Ltd.

박정원. (2023). 영토보전원칙과 일방적 분리 독립의 추구 - ICJ 코소보 권고적 의견이 낳은 규범적 혼란에 주목하며 -. 동아법학,(98), 185-214.

홍성필. (2016). 한반도 통합과 자결권의 적용에 관한 고찰. 법학논집, 20(3), 14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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