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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을 다루는 러시아의 당근과 채찍

카잔 쿨 샤리프 모스크

by 이준영

유럽에서 가장 큰 이슬람 사원이라는 쿨 샤리프(Kul Sharif) 모스크를 보니 그동안 아껴뒀던 감탄사가 절로 쏟아져 나옵니다. 모스크라고 해봐야 이태원 중앙성원 정도 크기의 것만 봐 왔지요. 소형 디지털카메라 화각으로는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하늘을 찌를 기세로 우뚝 솟은 미너렛(minaret, 이슬람 사원의 첨탑) 4개를 거느린 쿨 샤리프 모스크의 자태에 매료되었습니다.


카잔 시내에 있는 쿨 샤리프 모스크의 모습


당시에 러시아 정부가 그렇게 선전했지만, 쿨 샤리프 모스크가 유럽에서 가장 큰 모스크는 아닙니다. 이스탄불의 상징과도 같은 블루 모스크(Blue Mosque)에 견줄 바는 못 되지요.


하지만 비무슬림 국가인 러시아 땅에서 이런 모스크와의 만남이 제게는 참 신기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거 아십니까? 러시아는 전 세계 무슬림 국가들의 정부 간 협력기구인 '이슬람협력기구(OIC: Organisation of Islamic Cooperation)'에 옵서버 자격으로 2005년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무슬림 인구 비중이 넉넉잡아 15%라고 하는데, 러시아를 유럽 국가로 친다면 유럽에서 무슬림이 가장 많은 나라는 단연코 러시아입니다. 우연의 일치였을까요? 쿨 샤리프 모스크는 러시아가 전 세계 무슬림 국가들의 모임에 옵서버로 참여하기로 했던 바로 그해에 완공되었습니다.




물론 자국 내에 무슬림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무슬림을 좋아해서 러시아가 OIC에 기웃거리면서 모스크를 세워준다고 그리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러시아에서 이슬람 단체들의 활동은 철저하게 금지되고 이슬람 사원은 정보 당국의 면밀한 감시를 받습니다. 제가 모스크 경비원 파힘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사원에서 체첸 독립 투쟁 같은 정치적인 이야기는 절대로 꺼내서는 안 된다며 제게 신신당부했습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KGB의 후신) 요원들이 '소련식으로' 불순분자를 색출하려고 무슬림인 척하고 회중에 숨어있을지도 모르니 입조심하라는 따끔한 경고였습니다.


역사를 들여다보면, 러시아 사람들이 초원의 지배권을 놓고 무슬림들과 줄기차게 다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러시아가 무슬림 세력의 지배를 받던 시절도 있었고, 타타르인들이 바로 그 무슬림 지배자였습니다. 러시아는 이반 4세(Ivan IV Vasilyevich)가 1552년에 이곳 카잔(Kazan)을 점령한 이래 무슬림 영토를 집어삼키며 팽창을 거듭해 나갑니다. 당연하게도, 러시아제국 안에는 무슬림 주민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지요. 쿨 샤리프 모스크는 카잔이 이반 4세의 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순교한 무슬림 성직자 '쿨 샤리프' 이름을 딴 모스크라고 합니다.


러시아인들이 타타르인들의 도시였던 카잔을 정복한 후 무슬림들을 모두 기독교(동방정교)로 개종시키려 했으나, 그게 뜻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러시아제국 정부는 타타르 귀족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타타르 무슬림들이 카잔에 들어와서 살지 못하게 했고, 심지어는 타타르 어린이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내어 선교사 학교에 보내는 등 무슬림을 박해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채찍만 휘둘러서는 탈이 생기는 법입니다. 대규모 민중 반란인 푸가초프의 난(Pugachev's Rebellion, 1773~5)이 일어났을 때 무슬림들이 여기에 합세하면서 러시아 정부가 무슬림 박해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지요. 이 때문에 예까쩨리나 2세가 무슬림들의 신앙을 박해로 눌러 소멸시킬 수 없음을 자각하고 1788년에 신앙의 자유를 무슬림에 허가하는 칙령을 선포하게 되는데, 러시아 정부는 자국 내 무슬림들의 종교 사무를 관장할 관청을 설치하여 지금까지도 이슬람을 국가 권력의 발아래 두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러시아 땅에 사는 무슬림 국민, 특히 타타르 민족이 딴마음 먹지 않고 러시아 국가 권력에 충성하도록 꼬드기려고 정부가 이들에게 계속해서 당근을 준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백 년 넘는 세월 모스크바에 터 잡았던 이슬람 사원을 허물고, 그 자리에 예배 인원 1만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모스크를 건설하기도 했는데, 2015년 9월 23일에 거행된 새 모스크 개원식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레젭 타이입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과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초대하여 자리를 함께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무슬림과의 관계를 대내외 정치에 써먹으려는 러시아 최고 지도자의 속셈이 엿보이기도 합니다.


불과 한 해 전인 2014년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날름 집어삼켰으니, 푸틴 대통령이 수도 한복판에 거대한 이슬람 사원을 하나 지어놓고 무슬림 세계에서 가장 추앙받는 지도자인 에르도안 대통령으로부터 러시아의 불법적인 점령 행위를 추인을 받았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이기도 한 크림 타타르 무슬림들은 졸지에 고향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우크라이나 편에 서서 침략자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고자 합니다.


모스크바에 대형 이슬람 사원이 건설되기 전에 100년 넘게 원래 자리를 지키고 있던 모스크바성당모스크(Московская соборная мечеть)는 안타깝게도 사라지고 말았다




제가 바쉬키르와 함께 사원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부 장식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회중예배를 인도하는 이맘이 없었기에, 저희는 따로 여행자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예배 전에 얼굴과 손발을 물로 씻어내는 정결(淨潔) 의식을 근행했지만, 기차 안에서 달빛 아가씨가 제 팔뚝에 해준 유성펜 낙서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바람막이만 걸쳐서 팔을 가리고 예배드리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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